유억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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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억겸(兪億兼, 1896년 10월 23일 ~ 1947년 11월 8일)은 한국의 계몽운동가이자 친일 인사이다.
1922년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조선기독청년회를 중심으로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1925년 조선사정연구회와 흥업구락부에, 1927년에는 신간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많은 민족주의 운동가들이 검거된 뒤 전향한 흥업구락부 사건이 발생한 이후, 그 역시 윤치호, 정춘수 등과 함께 친일파로 활동했다.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조선기독청년회를 일본기독청년회와 통합하도록 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중 임전보국단과 언론보국회에 참가했다. 당시 그는 연희전문학교 부교장이었다.
광복후 미군정의 교육부장을 지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연세대학교의 유억겸기념관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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