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시조 | 강이식 |
인구(기준: 2000년) | 1,044,386 |
진주 강씨(晉州 姜氏)는 한국의 여러 성씨 중 하나로, 엄밀한 의미의 명칭은 진양 강씨(晉陽 姜氏)이나, 진양군과 진주시는 예전부터 자주 같이 관할되었기 때문에 흔히 '진주 강씨'로도 불린다.
시조는 고구려때의 강이식으로, 그의 후손 강 진(姜縉)이 신라(헌강왕)때 태중대부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 지면서 본관을 진주(晉州, 진양, 진산으로 불리기도 함)로 하게 되었다. 엄밀한 의미의 명칭이 '진양 강씨(晉陽 姜氏)'인 것도 강 진(姜縉)이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주 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의 5개파로 구성되는 데, 은열공파가 가장 먼저 발원하였지만, 규모는 박사공파가 가장 크다. 인헌공파는 고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의 후손들의 파이기도 한데, 이 파만 별도로 금천 강씨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성씨는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강(姜)'자를 씨(氏)로 삼는 성씨는 진주(晉州)를 단일본으로 하고 있다. 진주에 본관을 둔 다른 강씨가 있지만 이 강씨(康氏)는 한자가 다르다.
- 은열공파
은열공파(殷烈公派)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의 한 파이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로 나뉜다. 이 중 은열공파는 고려시대 귀주대첩에서 강감찬과 함께 공을 세운 강민첨(姜民瞻)을 파시조(중시조)로 한다.
- 박사공파
박사공파는 진주강씨의 파중 하나이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열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파, 인헌공파로 나뉜다. 박사공파는 고려시대 국자감 박사를 지낸 강계용(姜啓庸)을 파시조로 한다. 손자 강사첨(姜師瞻)이 어사를 지냈다 하여 어사공파(御史公派)라고 부르기도 한다.
- 소감공파
소감공파(少監公派)는 강위용(姜渭庸)을 파시조라 하고 있다. 강위용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중엽이후 의 인물로서 박사공 연대와 거의 비슷한 연대의 인물로 보고 있다. 휘(諱)자가 다 같은 용(庸)자로서 항렬이 같다하여 박사공의 아우(弟)파로 박사공파와 족보도 함께하고 항렬자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 관서공파
관서대장군(關西大將軍) 강원로(姜元老)를 파시조로 하고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길이 없으나 고려중엽인 고종(高宗)때 인물로 보고 있다. 박사공파보 상계에 기록된 교감공(校勘公) 휘 도(諱度)이하에 [원용(遠庸)자 기문(起文)후손(後孫) 원로(元老)]로 기록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공, 소감공, 시중공, 이상 세명을 3 형제파로 인증해 내려오고 있으나 관서대장군파는 시중공을 파조로 모시지 않고 후손인 관서대장군을 파조로 모시고 있을뿐더러 연대 순으로 따져 보아도 박사공, 소감공, 시중공을 3 형제파로 보아서는 안된다.
- 인헌공파
인헌공파는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姜邯贊)을 파시조로 하고 있다. 강감찬의 출생지인 금천을 따서 인헌공파를 따로 금천강씨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