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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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5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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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15세(라틴어: Ioannes PP. XV, 이탈리아어: Papa Giovanni XV)는 제137대 로마 교황(재위: 985년 8월 - 996년 3월)이다.
로마 교회 소속 신부 레오의 아들로서 합법적인 교황 요한 14세가 강제로 퇴위되고 찬탈자 프란코가 11개월째 교황좌에 앉아 있을 때 로마인들의 실력자 요한네스 크레셴티우스 2세의 추천을 받아 985년 9월 6일에서 9월 5일 사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요한 15세는 10년 재위 중 때때로 크레셴티 가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여 어느 정도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을 섭정 통치하고 있던 오토 1세의 미망인 아델라이데와 오토 2세의 미망인 테오파노와 가까이 지냈다. 교황은 트레비의 사절 레오를 통하여 루앙의 평화를 이룩하고 잉글랜드 왕국의 에델레드 2세와 노르망디의 대공 리처드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고 칙서로써 평화를 확인하였다.
989년 교황은 로렌의 대공 찰스의 조카 아르눌프를 랭스의 대주교가 되게 한 프랑스의 위크 카페에 의해 생긴 분쟁에 개입하였다. 프랑스의 왕 위그 카페는 랭스 근처 생바슬에서 회의를 소집하여 아르눌프를 퇴위시켰다. 왕은 그를 배신자로 보고 오리야크의 제르베르를 자기의 후계자로 선정하였다. 교황은 이 퇴위에 대해 반대하고 995년 사절을 보내어 무종에서 지방 공의회를 개최하여 제르베르를 단죄하고 그에게 성무 집정 정지 명령을 내렸다. 996년 위그 카페가 서거하자 아르눌프는 감옥에서 풀려나 랭스의 교구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990년경 교황은 폴란드의 대공 미에슈코를 통하여 그 나라를 교황의 봉토로 받았다. 교황은 처음으로 시성식을 거행하기로 하고 993년 1월 31일 라테라노에서 개최된 로마 지방 공의회에서 아우크스부르크의 울리크 주교를 성대하게 성인품에 올리고 2월 3일 교황 칙서로써 이를 공표하였다. 교황은 전임 교황들의 뜻을 받들어 클뤼니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시켰다. 교황의 독재와 친척들에게 베푼 지나친 호의로 인해 로마 성직자단의 비판과 반대가 일어나자 요한네스 크레셴티우스 2세는 교황을 토스카나로 피신하게 하였다. 거기서 교황은 젊은 왕 오토 3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왕은 황제가 되기 위하여 로마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요한네스 크레셴티우스 2세는 교황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황은 당당하게 로마에 들어왔으나 왕이 대관식을 위해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선종하고 말았다.
전 임 요한 14세 |
제137대 교황 985년 8월 - 996년 3월 |
후 임 그레고리오 5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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