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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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는 일제시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위안부 출신 및 여성단체, 사회단체가 함께 매주 수요일 행하는 집회이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가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이후에 정기적인 시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주관하는 형식이며 2006년 3월 15일 700회의 시위를 맞이하였다. 시위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수요시위가 시작한 이래로 105명의 위안부 출신이 사망하였으며, 현재는 대한민국 내에는 120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 수요시위의 요구 사항
수요시위가 요구하는 사항은 다음 7가지이다.
-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 위안부 진상 규명
- 일본 국회의 사죄
- 법적 배상
- 역사교과서 기록
- 위령탑 및 사료관 건립
- 책임자 처벌
[편집] 관련 반응
- 일본 정부는 수요시위나 요구사항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인적은 없다.
- 나카야마 나리아키 일본 문부과학상은 위안부에 대해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나 강제연행과 같은 기술이 줄어든 것은 정말 잘된 일이다", "위안부라는 말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 한승조 전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는 위안부의 배상문제에 관해 "성의 문제를 왜 돈의 문제와 결부해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느냐",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수준 이하의 좌파적 심성"이라는 발언을 하였다.
- 지만원은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위안부 놀음, 이제는 접어라", "몇명 안되는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삼아 국제 망신을 시키고 다닌다"라는 발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