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공병우(公炳禹, 1907년 1월 24일(음력 12월30일) ~ 1995년 3월 7일)는 안과의사이자 한글 기계화 운동을 펼쳤던 사람이다.
1938년에 한국인 최초로 안과 전문 의원을 개원한 의학 박사였지만, 해방 후부터는 사재를 털어 한글기계화운동에 주력하면서 세벌식 글자판 개발, 보급에 더 전념하였다. 1949년 최초로 실용적인 기계식 타자기를 개발했다. 그 이전에는 다섯벌식과 네벌식 글자판 타자기가 나와 있었으나 실용적인 제품은 없었으므로 공병우 타자기가 나오면서 일반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 말에 박정희 정권에서 타자기에 네벌식 글자판이 표준으로 채택되었고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컴퓨터에 두벌식 자판이 표준으로 채택되면서 글자판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5년에 사망했다.
목차 |
[편집] 약력
- 1906년 평안북도 벽동에서 태어남.
- 1926년 조선 의사 검정 시험 합격.
- 1936년 일본 나고야 제국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
- 1938년 공안과 의원 개설. (한국 최초의 안과 전문 의원 개설)
- 1949년 최초로 "실용적인" 한글 타자기 개발. 초성, 중성, 종성의 세벌식 글자판.
- 1958년 최초로 콘택트렌즈 도입 시술.
- 1968년 기계식 한영 겸용 타자기 발명.
- 1970년대 한글 네벌식 자판 반대 운동.
- 1971년 기계식 한글 점자 타자기 개발.
- 1980년대 세벌식 글자판 미국 교포 사회에 보급.
- 1988년 한글문화원 개설.
- 1995년 사망.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됨.
[편집] 디지털 시대의 업적
공병우는 90대였던 1990년대에도 한글과학화와 발전을 위한 평생의 꿈을 추구했다. 80년대 중반 부터 매킨토시 컴퓨터를 직접 활용하여 직결식 한글 세벌식 글자꼴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입력하는 세벌식입력기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그는 특히 세벌식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한글을 기계와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한글을 모두 표현하지 못하는 완성형 코드를 비판하고 조합형 코드를 지지하였으며 한글의 창제원리에 맞지 않는 네모 글자꼴의 한글 글꼴들의 획일화를 비판하였다.
[편집] 지은 책
-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자서전), 대원사
- '소안과학'
- '공병우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