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스테파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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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3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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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스테파노 3세(라틴어: Stephanus III, 이탈리아어: Papa Stefano III)는 제92대 로마 교황(재위: 752년 3월 26일 ~ 757년 4월 26일)이다.
스테파노 3세가 교황좌에 오르자마자 롬바르드족이 로마를 위협하기 시작하였고 통치자 아이스툴프와 맺은 4년간의 휴전이 4개월 만에 깨어지고 말았다. 비잔티움 제국에 구원병을 요청하였으나 아무런 도움이 없자 스테파노 3세는 753년 10월 로마를 떠나 파비아에서 단독으로 아이스툴프를 만났으나 회담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프랑크 왕국에 간 그는 폰티온 근처에서 피핀을 만나 궁전에서 환대를 받았다. 스테파노 3세는 성 베드로와 로마 시민들을 대신하여 피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피핀을 로마를 돕는다는 성대한 서약을 하였다. 스테파노 3세는 그 겨울을 생드니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피핀과 그의 아들들을 왕과 귀족으로 축성하였다. 다음해 봄 퀴에르지에서 개최된 프랑크인 귀족들의 춘계 회합에서 그들은 아이스툴프에게 스테파노 3세의 요청이 전해졌으나 그가 거절하자 피핀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파비아를 점령하였다. 이에 아이스툴프는 몰수한 라벤나 총독부와 로마의 영토를 되돌려주었다. 스테파노 3세는 10월에 로마로 귀환하였다. 프랑크군이 철수하자 아이스툴프는 다시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756년 1월에는 롬바르드군이 로마 주위에 진을 쳤다. 이에 스테파노 3세는 오스티아의 주교를 사절로 하여 피핀에게 성 베드로의 이름으로 된 서신을 전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피핀은 재차 알프스 산맥을 넘어와 롬바르드족을 항복시키고 더 엄한 대가를 요구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사절이 라벤나의 총독부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에 속한 도시들의 복구를 요청하자 피핀은 거절하였다. 이로써 로마 교회가 비잔티움 제국에 의지해 온 관계는 종식되고 그 대신 프랑크 왕국과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생드니의 수도원장 풀라드가 이끈 사절단이 점령된 도시를 방문하여 열쇠들을 모아 피핀에게 전달하자 피핀이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헌납하는 예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으로써 로마 교황의 현세적 주권이 공적으로 인정되었다. 757년 스테파노 3세는 피핀에게 서신을 보내어 이탈리아 안에서 교황의 수위권이 수행되고 있음을 알렸다.
전 임 스테파노 2세 |
제92대 교황 752년 3월 26일 ~ 757년 4월 26일 |
후 임 바오로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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