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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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진(金鶴鎭, 1838년 ~ ?)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친일 인물이다. 아호는 후몽(後夢)이다.
순조 대부터 철종 대의 집권 세력이던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이조판서를 지낸 김교근이며, 아버지인 김병교는 안동 김씨를 몰아낸 흥선대원군도 배척하지 않고 이조판서로 중용한 인물이었다.
1894년 형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지냈고, 이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김문현의 후임으로 전라감사에 임명되었다. 농민들의 원성을 듣고 있던 김문현을 대신해 회유책으로 김학진을 후임에 임명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척화파 관료 중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06년 홍문관 태학사에 임명되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