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순치제 | |
---|---|
재 위 | |
1643년 ~ 1661년 | |
왕 비 | {{{왕비}}} |
황 후 | {{{황후}}} |
왕 후 | {{{왕후}}} |
부 군 | {{{부군}}} |
앞선 왕 | {{{이전 왕}}} |
앞선 황제 | 홍타이지 |
다음 왕 | {{{다음 왕}}} |
다음 황제 | 강희제 |
청나라의 제3대 황제 |
순치제(順治帝. 1638년 3월 15일 ~ 1669년 6월 14일)는 청의 제3대 황제(재위: 1643년 ~ 1661년)로 이름은 애신각라복림(愛新覺羅福臨)이고 법명은 행치(行痴)이다. 홍타이지의 9남으로 어머니는 그의 후궁이었던 장비(莊妃, 효장문황후)이다. 1643년 부황의 갑작스런 붕어로 제후회의에서 황제로 선출되었는데 그 때 복림의 나이 6세였다.
그가 즉위하게 된 것은 숙부 도르곤과 모후인 효장태후 덕분이었다. 도르곤은 1644년 명이 멸망하자, 투항한 명의 장수 오삼계와 함께 이자성을 공격, 어부지리로 중국 대륙을 거의 통일하였고, 명의 수도 북경에 들어가 자신들이 명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조라고 선포하였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도르곤은 첫사랑이자 형수인 효장태후와 결혼하였고, 이에 반감을 가진 순치제는 1650년 도르곤이 죽자 그의 무덤을 부관참시하였다. 그의 치세에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이 대포 기술과 고딕 양식의 건축 기술을 들여와 북경에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다.
순치제는 동악씨라는 후궁을 총애하였는데, 그녀가 1660년에 사망하자, 정치에 뜻을 잃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61년에 천연두로 붕어하였다 했는데, 일설에는 동악씨의 죽음에 순치제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해서 제위에서 물러난 뒤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고, 1669년에 32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장황제(章皇帝)이다.
목차 |
[편집] 황후, 후궁, 자녀
[편집] 효강장황후 동가씨
- 성조 강희제 현엽
[편집] 영비
- 복전
[편집] 목극도씨
- 영한
[편집] 파씨
- 유유
[편집] 진씨
- 상녕
[편집] 당씨
- 기수
[편집] 유씨
- 융희
[편집] 양씨(楊氏)
- 공주-납이사(納爾杜)에게 출가.
청나라 황제 목록 |
---|
누르하치 - 홍타이지 - 순치제 - 강희제 - 옹정제 - 건륭제 - 가경제 - 도광제 - 함풍제 - 동치제 - 광서제 - 선통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