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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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긍선(吳兢善, 1877년 10월 4일 ~ 1963년)은 한국의 의사, 사회사업가이자 친일 인물이다. 아호는 해관(海觀)이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장남인 그는 관직에 올라 상경하였다가 일찌감치 개화 사상에 눈을 떴으며, 그의 누이 동생들인 오현관과 오현주는 신교육을 받은 여성 운동가로 자라났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개화파로서 이상재 등과 함께 협성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에서 일하다가, 미국에 유학하여 루이빌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피부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장로교 선교사 자격도 얻은 뒤 귀국하였으며, 군산, 광주, 목포 등 지방에서 의료 선교를 통한 사회 사업에 종사했다. 이 기간 중 군산의 영명중학교, 목포의 정명여학교 교장을 맡았다.
1912년 세브란스의전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고, 일본 정부의 주선으로 도쿄제국대학에서 수학한 뒤 1917년에는 세브란스의전에 피부과교실을 신설하고 과장으로 취임했다. 1934년 세브란스의전 제2대 교장에 올랐다.
그는 1930년대 초반부터 일제가 황민화를 위해 설립한 조선교화단체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친일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여,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때는 적극적으로 친일에 참여했다. 사상범을 감시하는 사상보호관찰소 보호사 직무촉탁에 임명되었고, 친일 단체들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에 가입하여 강연과 기고 활동을 통해 전쟁을 미화하고 참전을 독려했다.
1918년 경성보육원(해관보육원의 전신), 1931년 경성양로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사업 분야에서 공을 세워 많은 포상을 수여받았으나,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도 선정되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한국 최초의 양의사로서 서양의학의 선구자이며 기독교적 양심을 지닌 사회사업가, 또는 기독교와 의술을 출세에 이용한 기회주의적 친일인사라는 이중적인 판단이 상존하고 있다.
세브란스의전 후신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해관 오긍선선생 기념사업회와 함께 매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편집] 바깥 고리
분류: 1877년 태어남 | 1963년 죽음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