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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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영(尹澤榮, 1866년 ~ 1935년)은 순종의 장인이다.
1899년 시강원에서 벼슬을 시작했고, 1906년 딸이 황태자인 순종의 두번째 부인으로 간택되어 이듬해 황후가 됨에 따라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에 봉해졌다.
1910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다가, 채무 관계로 파산 선고를 받아 1928년 불명예 실작 하였다.[1]
그는 헤픈 씀씀이로 부채를 쌓아 ‘채무왕(債務王)’, '차금대왕(借金大王)'으로 불렸고, 1920년 아들 윤홍섭과 함께 베이징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사망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포함되었다.
고종 독살설 중 일부설에 따르면 그는 돈 때문에 고종을 독살한 인물로 묘사된다.
[편집] 가족 관계
-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56,80,84쪽.
분류: 1866년 태어남 | 1935년 죽음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