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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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李韓烈, 1966년 8월 29일 - 1987년 7월 5일)은 대한민국의 학생열사 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생으로,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1987년 6월 9일, 다음날 열릴 예정의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여기서의 고문살인은 같은 해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일컬음)를 앞두고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의 시위 도중 전투경찰(전경)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한달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스물 두살의 나이에 사망했다. 일부 전경이 시위진압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것이다. 당시 이한열 열사가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 이종창에 의해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사진은 뉴욕타임즈 1면 머릿기사에 실리기도 하면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의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7월 9일 치러진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은 연세대 본관→신촌로터리→서울시청 앞→광주 5·18묘역으로 이어졌다. 당시 추모 인파는 서울 100만, 광주 50만 등 전국적으로 총 160만 명이었다고 한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한 청년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내었고 6월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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