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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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崔燕)은 일제 강점기에 고등계 경찰을 지낸 친일 인물이다. 본명은 최령(崔鈴)이다.
30세 무렵이던 1918년 함흥 경찰서 순사로서 경찰 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말단 직책에서 출발하였으나 1922년 경부보 시험에 합격한 뒤 이후 함경도 지방 곳곳을 돌면서 경력을 쌓아 1942년 조선인으로서는 경찰 내 최고위 계급인 경시(警視)에 올랐다. 이후 황해도 보안과장을 거쳐 경기도 형사과장을 지내던 중 광복을 맞았다.
그는 고등계 형사로서 독립 운동을 탄압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특히 혜산 경찰서에 근무할 때 1938년 혜산 사건으로 박달을 비롯한 3백여 명의 독립 운동가들을 체포, 고문하여 악명이 높았다. 이 사건은 독립 운동이 활발한 만주 지역이나 중국공산당과 연계를 갖고 있던 함경도 지역의 독립 운동 국내 거점을 분쇄하려는 대규모 조직 사건으로 김일성과도 관련이 깊다. 최연은 이 혜산 사건에서 공을 세워 경찰 공로기장 훈장을 수여 받았다.
광복 후 경찰 조직은 미군정의 전직 일제 경찰 등용 방침으로 친일 경찰들이 그대로 현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최연도 경기도 경찰부의 경무과장으로서 경찰부장에 차례로 임명된 미군정 장교와 장택상을 보좌하며 인사에 개입하였다. 그는 함경도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기에, 북조선에서의 친일 추궁과 체포, 재판을 피해 월남한 고등계 출신의 친일 경찰들을 대거 추천하여 이들을 남한의 경찰 조직 내에 포함시킬 수 있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법 공포 이후 친일 경찰이 체포될 때 최연 역시 마포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반민특위가 강제로 해체된 뒤 공민권 10년 정지의 가벼운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