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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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金嘉鎭, 1846년 ~ 1922년 7월 4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동농(東農).
그는 세도가인 안동김씨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서자였기에 오랫동안 하위 관직을 맴돌았다.
갑오경장으로 적서 차별이 철폐되자 1886년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도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개화파 관료로 활동했다. 1895년 농상공부대신, 1906년 충청남도 관찰사를 역임하는 등 서자 출신으로는 이례적인 고위직에 있다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본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는 3·1 운동 이후 조선민족대동단 총재를 역임하다가 안창호 등의 은밀한 공작 끝에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고문에 추대되었기에 친일파로 보기는 어렵다. 대동단은 의친왕의 상하이 탈출을 기도한 비밀결사 단체이다.
그러나 자작 작위를 공식적으로 반납한 적이 없다는 점과 연로한 나이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별다른 공적 없이 곧 사망했기 때문에 독립유공자 서훈은 받지 못했다.
맏아들 김의한과 맏며느리 정정화도 독립운동가이다.
분류: 1846년 태어남 | 1922년 죽음 | 한국의 독립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