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복한(金福漢, 1860년 1월 20일 ~ 1924년 2월 20일)은 조선의 문신이며 구한말의 의병장이다. 호는 지산(志山)이다.
충청남도 홍성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한학을 익혔고, 음직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그는 순종이 왕세자 시절 서연관으로 일하였으며, 1892년 과거에 급제하고 홍문관, 사간원, 성균관, 승정원에서 근무했다.
1894년 갑오경장에 반발하여 관직에서 사임한 뒤 낙향했는데, 이듬해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떨어지자 비분강개한 유생들을 모아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이종사촌 형인 이설과 안병찬 등이 함께 참가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같이 거사했던 홍주목사 이승우가 마음을 바꿔, 김복한 등이 체포되면서 의병 항쟁은 실패했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후 또다시 이설, 안병찬, 민종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재차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그는 이때 일본군에게 고문을 당하여 불구가 되었다.
1919년 3·1 운동 때에는 영호남 유림을 규합하여 독립 청원서를 작성한 파리장서 발송 사건에 가담하여 투옥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홍성에 위치한 추양사(秋陽祠)라는 사당에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2004년········2005년 선정, 이 달의 독립 운동가 ········2006년 |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최용신 | 최석순 | 김복한 | 이동휘 | 한성수 | 김동삼 | 채응언 | 안창호 | 조소앙 | 김좌진 | 황현 | 이상설 |
분류: 1860년 태어남 | 1924년 죽음 | 한국의 독립 운동가 | 충청남도 출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