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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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준(金思濬, 1855년 ~ ?)은 구한말의 관료이다. 그는 용모가 수려하고 시문에 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의 10대손이며, 의친왕의 장인이다. 김사준의 딸 김수덕이 1893년 의친왕과 결혼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광해군과의 권력 다툼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가 친정에 앞으로는 국혼을 하지 말라는 전교를 내린 적이 있어 김사준이 의친왕과 딸의 혼례를 거절하였으나, 신부를 마음에 들어한 명성황후의 뜻에 따라 혼인이 성립되었다는 소문이 적혀 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협조한 공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16년 고종 망명을 꾀하는 해외 독립 운동 조직과 연계된 것이 드러나 작위를 박탈당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작위를 받은 사실 때문에 포함되었으나,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서는 작위 박탈 사실을 인정 받아 명단에서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