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해(金澥, 1534년~1593년)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사회(士晦), 호는 운송(雲松)이며, 명종 19년인 1564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 사헌부 지평, 밀양 도호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할 때 상주 목사로 있었는데, 전쟁 초기에 관아를 비웠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상주 판관 정기룡(鄭起龍, 1562~1662)과 함께 상주성을 탈환한 후 이듬해 초에 둘째 아들 김경원(金慶遠)과 함께 순절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선무원종일등공신에 추록되고 승정원 도승지로 증직되었다. 또 1695년에 이조 참판이 가증되었다. 공주 우정면 내산리에 충신효자 정려각이 있다.
![]() |
이 문서는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
![]() |
이 문서는 한국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