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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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족(Boer)은 보어인, 아프리카너라고도 하는데, 남아프리카 지역으로 이민하여 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사람들과 그의 후손들을 말한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구성원중 가장 초기의 유럽출신 이민자들이였다. 네덜란드어 방언에서 파생된 아프리칸스어(Afrikaans)를 쓰기도 한다. 보어는 네덜란드어에서 농부를 뜻하는 말이다.
보어인들은 줄루족등의 원주민들을 소총등의 우세한 화기로 몰아내고 북쪽으로 확장하였으며 19세기에 그들은 영국 제국에 맞서 오렌지 자유국와 트랜스발 공화국이란 작은 두개의 나라를 세워 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다. 이러한 작은 국가는 거의 2세기 동안 존재하였으나 제2차 보어전쟁(1899년~1902년)에서 패하여 영국에 항복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1877년). 원래는 케이프 아프리카너와 보어는 구별되었으나 현재는 동의어처럼 쓰여지고 있다. 보통 보어인은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현대의 일부 보어인들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성립이 억지로 강요된 것이 였으며 보어전쟁 혹은 마리츠 반란(1914년)의 과정중에 빚어진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편집] 보어전쟁
트렌스발 공화국(현재의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략적 요충지일 뿐아니라 풍부한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위치하고 있다. 1900년에는 트란스발의 금 매장지대인 랜드는 세계 금 공급의 25%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금광붐에 따라 새로운 영국 이주민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오이틀란데르'라고 불리웠다. 이들이 점점 늘어 남에 따라 보어인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장로교에 근거한 엄격한 생활방식은 성공회를 믿는 영국인과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았으며 흑인에 대한 영국인의 태도도 불만이였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넓히던 영국과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보어 전쟁이다. 전쟁의 발달은 5년이상 거주한 영국 이주민들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를 구실로 한것이였다. 보어 전쟁 당시 보어인들은 사실상 농부들에 불과했지만 민병대를 구성하여 영국군에 대항했다. 5만 4천여명밖에 안되는 소수였지만 맥심 기관총, 대포, 최신 모제르 총등으로 무장했으며 적의 손이나 발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사격솜씨를 갖추었다고 한다. 1900년 스피온 콥에서의 전투는 보어인이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영국군과 영국에게는 큰 충격이였다.
1899년 작은 국경도시 마페킹(Mafeking, Mafikeng)에서 217일간 영국군은 보어인들에 대한 포위공격을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1900년에는 오렌지 자유국의 수도 블룸폰테인과 트란스발의 수도 프리토리아를 점령하였다. 이후 보어인들은 게릴라식 전략으로 전환하여 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영국군은 게릴라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흑인들과 보어인들의 거주지 3만여 가구를 소각하여 활동근거를 말살하고, 여자와 어린이 보어인들을 강제수용소에 몰아넣었다. 이는 야만적 학살을 낳은 최초의 강제수용소였으며 훗날 나치의 강제수용소의 본보기가 되었다. 총 2만 7927명의 비전투원 어린이와 여성이 이 수용소에서 죽었다. 어린이들과 여성들을 수용소에 죽게 한 영국군의 잘못은 고의적인 대량학살이라기 보다는 영국군의 무능력과 무감각의 산물이였다. 결국 보어 전쟁은 보어인들의 패배로 끝났다. 1902년 5월 31일 베레니깅 조약에서 트렌스발과 오렌지 자유국은 독립을 상실하고 영국의 식민지로 병합되었으며 1910년에 남아프리카 연방이 수립되었다.
[편집] 에밀리 홉하우스의 반전운동
영국 콘월 출신의 성직자의 딸로 태어난 에밀리 홉하우스는 1900년 12월 케이프타운에 가서 남아프리카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구제운동을 시작하였다. 극악한 상황을 목격한 홉하우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항의하는 대중운동을 시작했으며 이에 영국 정부는 밀러선트 포셋이 책임을 맡은 위원회를 조직하여 개선에 나서게 되었다. 육군성의 이러한 무능과 야만은 영국민들 사이에서도 저항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으며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는 이후 1906년 1월 자유당의 집권에 이르는 원인중 하나가 된다.
[편집] 흑인들과 보어전쟁
보어전쟁당시 보어인들은 흑인들을 전쟁에 동원했으며, 영국군은 흑인들의 본거지를 말살하여 보어인들의 활동근거지를 없애고자 하였다. 이러한 흑인들의 전쟁피해는 제1차 세계대전때에도 일어나, 독일군과 영국군 모두 식민지내 흑인들을 전쟁에 강제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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