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천전리 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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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보 | |
지정 번호 | 국보 147호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 |
제작 시기 | 신석기 시대에서 신라까지 |
1973년 5월 8일 지정 |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川前里刻石)은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세겨져 온 암각화이다.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의 상류에 위치하여 있다. 1970년 12월에 동국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정식적인 학술조사 결과 1973년 5월 8일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목차 |
[편집] 구성
가로 9.5m, 높이 2.7m의 인위적으로 다듬은 듯한 바위면에 조각이 가득하다. 바위면은 아래를 향하여 약 15˚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적인 풍화로부터 보존될 수 있었다. 중간을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로 나누어 각각 세겨진 시대가 다르다.
[편집] 상부
주로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걸쳐 이루어진 조각이 있다. 조각대상의 내부를 파낸 면 쪼으기(모두 쪼으기)기법과, 대상의 윤곽만을 쪼아 나타낸 선 쪼으기기법이 이용되었다. 면 쪼으기으로 조각한 대상으로는 사람 형상과 함께 사슴을 포함한 짐승, 뱀과 새, 물고기 등의 형상이 있다. 세겨진 물고기 중 일부는 날이 선 지느러미가 마치 상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편 선 쪼으기로 조각한 마름모 꼴이나 둥근 모양을 가진 기하학적 무늬도 존재한다.
[편집] 하부
주로 신라 초기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조각되었다. 선긋기로 그어진 선들과 함께, 기마행렬도, 배가 항해하는 모습, 인물 등이 세겨져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신라 때의 생활양식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 외에 용이나 말, 사슴 등으로 추정되는 짐승의 형상도 보인다. 한편 함께 세겨진 명문(銘文)은 약 800자 이상이 세겨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부는 풍화되고 또한 일부는 후대에 의하여 훼손되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는 글자는 300여자 정도이다. 신라 법흥왕 때 세겨진 이 명문에는 화랑들의 이름이나 당시의 직위명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신라사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편집] 바깥 고리
- 울주천전리각석 - 문화재 지식정보센터
- 울주군 천전리 각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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