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며 후에 만주국 황제에 즉위한 푸이(만주어: 아이신교로 푸이, 爱新觉罗溥仪)의 생애를 그린 영화이다. 1987년에 개봉되었고, 대한민국에서는 1988년에 개봉되었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존 론(Jone Lone)의 이탈리아, 중국, 영국 합작 영화다. 198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의 상을 휩쓸었다. 중국 당국이 자금성에서의 영화촬영을 허락한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목차 |
[편집] 개요
서태후가 그를 황제로 지명하고 서거한 1911년부터, 일개 시민이 되어 생애를 마치는 1967년까지 일어났던 일을 중심으로 중간중간에 전범수용소에서의 고문 신을 묘사하면서 시민으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의 푸이의 인생을 그린 영화다. 푸이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각색이 들어갔다. 세계 최초로 자금성에서 로케이션을 한 영화로 화제를 불렀다. 푸이 역은 존 론이 맡았으며,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
1987년의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각색상, 편집상, 녹음상, 의상디자인상, 미술상, 작곡상 9부문을 수상하는 등, 개봉당시부터 평가가 높았으며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중국 대륙을 무대로 한 영화이나,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였다거나(그래서 중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점했다), 독자적인 각색도 많다(실제와 다른 묘사 등). 중국에서는 같은 테마의 작품이 이미 몇 편 만들어진 상태에다, 당시에는 아직 외국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지명도는 낮았다.
관광명소로서 하루에 5만명이 다녀간다는 자금성을, 중국 정부의 전면 협력으로 몇 주씩이나 빌려 촬영했다. 전범수용소 소장 역을 맡은 배우 잉 루오쳉은 당시 중국 문화부 차관이었다. 색채감각이 풍부한 베르톨루치의 영상미는 압권이다. 특히 즉위식의 장엄하고 화려한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유명한 장면이 되었다.
[편집] 줄거리
1950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간의 국공 내전이 결말을 짓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의 도시가 된 하얼빈 역. 5년간에 걸친 소련의 억류에서 풀려나 송환된 중국인 전범들이 가득한 가운데, 한 남자가 자살을 시도한다. 삶에서 멀어지며 옅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릴 때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 남자가 바로 청나라 최후의 황제였던 선통제 아이신줴뤄 푸이였다.
1906년 서거한 광서제의 뒤를 이어 겨우 네 살에 황위에 오른 푸이는 즉위 3년 만에 중국을 뒤흔든 신해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황제 칭호와 사유 재산만 인정받은 채 퇴위당한다. 황후와 후궁을 맞이 하게 되고, 영국인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신사상에 매료된 그는 서양으로의 유학이라는 꿈을 갖는다. 황실 재산의 좀을 먹는 환관들을 축출하고 새로운 인물을 기용하는 등 나름대로 황궁 내의 개혁을 시도한다.
1924년 군벌 이옥상의 쿠데타로 그는 결국 자금성에서 쫓겨나 청나라 황제의 칭호를 빼앗긴다. 만주에서의 영향력행사를 위한 일본인들의 획책에 넘어간 나머지는 그는 유학의 꿈을 접고 만주국의 황제로 우뚝 올라선다. 그러나, 만주국의 황제라는 칭호는 허울에 불과하였고 실권은 일본인들이 쥐고 있었고 푸이의 우매함에 격분한 황후는 아편 중독에 빠진다. 이차세계 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나자 푸이는 일본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만주국에 이미 들어온 소련군에게 체포되어 중국으로 넘겨진다. 만주국 포로를 수감하는 형무소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출소한 그는 평범한 정원사로 일상을 지내고, 마지막 자금성을 찾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편집] 스탭
-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각본: 마크 펩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프로듀서: 제레미 토마스
- 음악: 데이빗 바이언, 사카모토 류이치, 콩 수
- 촬영: 비토리오 스토라로
- 미술: 페르디난도 스카피오티
- 의상: 제임스 아케슨
[편집] 작은 이야기
- 푸이의 남동생인 푸제가 영화제작의 조언을 주었다.
- 무려 19,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었다.
- 영화에 출연한 라마교 승려들은 여성과의 신체적 접촉을 금하기 때문에 의상 착의와 손질을 위해 남성들이 고용됐다.
-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베이징에 공식 방문을 했지만 당시 대관식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자금성에 갈 수 없었다.
- 일본에서의 개봉 초기 난징 대학살 장면이 삭제되었으나, 감독의 항의로 이내 삭제 장면이 포함되었다.
[편집] 관련 항목
분류: 이탈리아의 영화 | 1987년 영화 | 전기 영화 |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