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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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운(成岐運, 1847년 ~ 1924년)은 조선의 관료이며 친일파 인물이다.
1879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초년 관료 시절에 청나라 톈진에서 1년간 주재하며 근무했다. 그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청군의 개입을 요청하는 등 본래 남정철, 박제순 등과 함께 친청파에 속했으나 이후 명성황후와 밀착했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사망하면서 여흥 민씨 세력이 몰락하자 친일파로 신속히 변신하는 기회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1902년 일본이 경부선 철도의 공사를 시작했을 때 철도원(鐵道院)의 총재를 맡았고, 이후 지방의 관찰사를 지냈다. 경상남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의병 토벌에 앞장 섰다. 1906년 박제순을 수반으로 한 친일 내각이 수립되자 농상공부대신으로 입각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강제 체결후 일본 정부로부터 조약 체결에 협조한 공으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모두 선정되었다.
분류: 1847년 태어남 | 1824년 죽음 | 조선 말기의 정치인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