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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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의(李鳳儀, 1839년 2월 14일 ~ 1919년)는 조선의 관료로 친일 인물이다.
본래 호남 출신으로, 총어사인 이경우에게 입적되었다. 처음 입적되었을 때 서울에 올라와 호남 말씨를 쓰자 사람들이 놀렸고, 신중한 성격의 이봉의는 몇달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서울 말씨를 익힌 다음에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경우의 집안은 대대로 고위 무관 벼슬을 지낸 가문이었다. 이봉의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고 1893년 우포도대장, 1894년 총어사에 임명되었다.
이완용의 친일 내각에서 육군부장(陸軍副將)과 군부대신을 지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에 협조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고,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을 발표했을 때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