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사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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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사키 성(일본어: 弘前城, ひろさきじょう)은 일본의 아오모리 현 히로사키 시에 있는 성으로 나라에서 지정한 사적이다. 다른 이름은 다카오카 성(일본어: 鷹岡城, たかおかじょう)이다.
[편집] 개요
쓰가루 평야에 위치하고, 성곽의 형태는 제곽(사다리꼴 성곽)식 평산성이다. 혼마루, 니노 마루, 산노 마루, 요노 마루, 북의 성곽, 서의 여섯 성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자, 석벽, 흙보루 등 성곽의 전체적 모습이 거의 성이 황폐할 때의 원형을 남겨두고 있는 귀중한 성이다. 덴슈는 3층3계로 에도 시대 후기에 재건되어 현존하고 있어, 망루로서 니노 마루에 3층의 동남 망루·북동 망루·남서 망루의 3용마루, 성문(누문)으로서 산노 마루 추격문·산노 마루 동문·니노 마루 남문·니노 마루 동문·북의 성곽 귀갑문의 5마룻대가 각각 성을 쌓을 때의 모습으로 현존하여, 모두 나라의 중요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에도 시대에는 히로사키 한, 쓰가루시가 있던 성으로서, 쓰가루 지방의 정치경영의 중심이 되었다. 현재는 히로사키 공원(오요 공원)로서 관광명소가 되어, 히로사키 시에 의해 소유 및 관리되고 있다. 덴슈와 벚꽃의 조화가 아름다워, 일본 굴지의 벚꽃의 명소로서 일본 벚꽃 명소100선에 뽑혀있다.
[편집] 연혁
- 1590년 난부 시를 따르고 있던 오우라 다메노부는, 오다와라세메에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난부 시에 앞서 45,000석의 영지인도로서 슈인죠를 받았다. 오우라를 쓰가루로 개성하였다.
- 1594년 다메노부, 호리코시 성(히로사키 시 호리코시)을 쌓아 오우라 성에서 옮기지만, 군사에 맞지 않음을 이유로 새로운 성의 후보를 다카오카(현재의 히로사키 성의 땅)에 선정하였다.
- 1600년 다메노부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게 붙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으로부터 2,000석의 가증을 받아 47,000석의 히로사키 번이 성립되었다.
- 1603년 다메노부가 다카오카에 축성을 시작하다.
- 1604년 다메노부가 교토에서 객사하여, 축성은 중단되었다.
- 1609년 2대 쓰가루 노부히라, 재축성한다. 호리코시 성과 오무라 성의 남은 재료를 사용하여 급한 막이로 축성을 행하였다.
- 1611년 얼마 되지 않은 1년 1개월로 히로아키성이 낙성. 동서 612m, 남북 947m, 총 면적 385,200m²에 미치는, 47,000석을 넘은 위용을 자랑했다.
- 1627년 낙뢰에 의해 5층 5계의 덴슈를 소실. 이후, 200년 가까이 덴슈가 없는 시절이 이어졌다.
- 1810년 9대 번주 쓰가루 노부요시, 3층 망루를 신축한다고 에도 막부에 부탁하여, 혼마루에 현재의 3층 덴슈가 완성되었다.
- 1871년 하이한치 현에 의해, 황폐한 성이 되다. 동북 진다이의 분영를 두었다.
- 1873년 동북 진다이의 분영을 폐지. 이 후, 혼마루 어전이나 무예소 등이 부셔졌다.
- 1894년 옛 영주 쓰가루시가 성 터를 시민공원으로서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 성지의 대여를 부탁하여 허가받다.
- 1895년 히로아키 공원으로서 시민에게 일반 개방되다.
- 1898년 산노 마루가 육군병기지창(나중의 제 8사단 병용부)용지가 되다.
- 1903년 이 이후 벚나무가 심어져, 벚꽃의 명소가 되다.
- 1906년 북의 성곽, 작은 망루와 서의 성곽, 남서 망루의 2용마루가 소실되다.
- 1908년 요시히토가 공원을「오요 공원」이라 명명하다.
- 1937년 현존 건조물 무리가(세개의둥근 동문을 제외)가 구 국보에 지정되다.
- 1950년 문화제 보호법이 제정되어, 현존 건조물 무리(산노 마루)는 중요문화재가 되다.
- 1952년 나라의 사적으로 지정되다.
- 1953년 3개의 둥근 동문이 나라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존 건조물 전부가 나라의 중요문화재가 되다.
[편집] 바깥 고리
- ((한국어)) 히로사키 관광 컨벤션 협회
분류: 일본의 성 | 아오모리 현의 건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