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호노리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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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오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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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호노리오 1세(라틴어: Honorius I, 이탈리아어: Papa Onorio I)는 제70대 로마 교황(재위: 625년 10월 27일 - 638년 10월 12일)이다.
호노리오 1세는 캄파니아 출신이며 집정관 페트로니우스의 아들이다. 교황 선출 확인은 동로마 제국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라벤나의 총독에게서 왔다.
교황좌에 오른 후 라벤나의 총독 이사아키오스에게 서신을 보내어 롬바르드족의 왕 아달로얄트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토리노의 공작 아리오알트를 지원한 주교들을 로마에 보내어 참회하도록 요구하였다. 사르데냐에 보낸 두 통의 서한은 행정관 테오도레의 지나친 행위를 언급하였고 에스파냐의 톨레도 공의회에 투르니누스 부제를 파견하였다. 영국에는 캔터베리의 호노리우스와 요크의 파울리노에게 팔리움을 보냈으며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의 수좌 주교라는 교황의 서한은 위조인 듯하다. 영국인들이 부활 대축일을 로마 교회의 축일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비리누스 주교를 파견하여 서부 색슨족을 위하여 사목하게 하였다.
동방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단성론자들의 반대가 심하게 일어났다. 호노리오 1세의 잘못된 개입은 교황의 무류권에 손상이 되었다. 호노리오 1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과 인성이 신비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금도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칼케돈 공의회의 정식(formula)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 안에는 단일 의지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은 부패되지 않으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7장 23절이 언급하는 그 율법의 지배를 받지도 않을 뿐 아니라("나는 내 지체 안에서 또다른 법을 알아봅니다. 그것은 내 이성의 법을 거슬러 싸우며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 안에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14장 36절의 내용처럼("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성부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제가 일어났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피로스는 호노리오 1세의 후임자 세베리노가 단성론을 단죄하였으나 죽을 때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단성론을 지지했다는 사실과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교황 아가토가 보낸 사절들의 임석하에 중요한 교리를 선포할 때 아가토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세르기우스 1세에게 보낸 두 통의 서신이 문제가 된다고 제기하였으며, 제13회기에서 아가토를 포함하여 단성론이 단죄되었고 마지막 회기에서도 아가토가 세르기우스 1세와 치루스의 뒤를 밟았다는 이유로 역시 단죄되었다.
전 임 보니파시오 5세 |
제70대 교황 625년 10월 27일 - 638년 10월 12일 |
후 임 세베리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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