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칙령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낭트 칙령은 1598년에 프랑스의 앙리 4세가 낭트에서 발표한 칙령이다. 위그노 등의 프랑스 개신교신도들에 대해 가톨릭교도와 동등한 권리를 주어 근대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 그 이전에는 공직취임등에서 차별을 받았으며, 개신교를 믿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이 칙령으로 인해 프랑스의 종교 전쟁인 위그노 전쟁이 종결되었다.
낭트 칙령에 의하여 위그노 전쟁은 급속히 수습되었으며 프랑스 국가 통일의 출발점이 되었다. 국가재정도 안정되어 프랑스가 17세기 유럽에서 대국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685년 루이 14세는 퐁텐블로 칙령을 통해 낭트 칙령을 폐지함으로써 프랑스는 다시 가톨릭 중심 국가로 되돌아갔다. 이로써 개신교 신도들의 대부분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국외로 떠났으며 이 사건을 통해 프랑스의 쇠퇴가 가속화되었다. 프랑스 개신교 교회의 신도들은 장 깔뱅의 직업소명설에 근거, 상공업등의 프랑스 산업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국외 이탈은 국가 재정의 고갈을 부르게 되었다. 이는 결국 프랑스 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