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 |
이름 |
임기 |
주요 업적 |
제01대[1] |
김형민(金炯敏) |
1946년 9월 28일[2] - 1948년 12월 14일 |
전재민 수용계획 수립추진, 남산동 일본인 여관 13동을 수용소로 활용, 요정, 사찰, 빈집 등을 개방하여 전재민 수용 |
제02대 |
윤보선(尹潽善) |
1948년 12월 15일 - 1949년 6월 5일 |
문맹퇴치를 위하여 9개 초등학교 신설, 동회에 국문보급반 편성 운영, 관혼상제의 허례허식 타파를 위해 신생활운동 전개, 식량배급 행정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유령인구와 매점매석 단속 |
제03대 |
이기붕(李起鵬) |
1949년 6월 6일 - 1949년 8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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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4대 |
이기붕(李起鵬) |
1949년 8월 15일 - 1951년 5월 8일 |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서울특별시 부산행정청을 설치하여 피난온 서울시민 구호업무담당, 3,000명의 걸인을 수용하기 위해 9개의 무료숙박소 설치 운영, 1949년 8월 처음으로 운수업자를 지정, 105대의 버스운영(요금 80원) |
제05대 |
김태선 |
1951년 6월 27일 - 1952년 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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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6대 |
김태선 |
1952년 8월 29일 - 1956년 7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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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7대 |
고재봉 |
1956년 7월 6일 - 1957년 12월 13일 |
시립병원 등 6개 병원과 보건소의 시설 개선, 식수난 해결을 위해 공동정호 100개소 신설, 상수도 7만t 증산계획을 국고보조로 시행 |
제08대 |
허정(許政) |
1957년 12월 14일 - 1959년 6월 11일 |
우회도로 정비 및 보도의 대대적인 포장 실시, 주택난 해소를 위해 120만평의 미아리지구 택지조성 방안 마련, 시립종합병원과 보건소 개방, 방역 위생사업소 운영, 마장동 도축장 완공 |
제09대 |
임흥순(任興淳) |
1959년 6월 12일 - 1960년 4월 30일 |
청계천 암거공사와 용산구∼성동구∼동대문구∼성북구 ∼의정부간 순환도로 건설 추진, 1960년 아시아 축구대회 대비 효창운동장에 축구장 개설, 4개 보건소 청사 신축 및 공중변소 공동우물, 공중목욕탕 증설 |
제10대 |
장기영(張基永) |
1960년 5월 2일 - 1960년 6월 30일 |
중부병원을 일반병원으로 활용하고, 부속 결핵요양소 신설, 23개동의 오물수거 지역확장 및 50개소의 공동우물 설치, 노동회관을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수운영 |
제11대 |
김상돈(金相敦) |
1960년 12월 30일 - 1961년 5월 16일 |
최초의 민선 서울특별시장, 건전재정을 도모하고, 부정에 일벌백계를 실시함으로서 공직기강확립, 도심지 교통량 분산, 각종 공장과 창고의 교외이전 정책 추진 |
제12대 |
윤태일(尹泰日) |
1961년 5월 20일 - 1963년 12월 16일 |
1962년 2월 서울특별시행정에관한특별조치법이 제정됨에 따라 중앙관장사무가 대폭이양되고, 행정기구의 대폭적인 개편실시, 인구 500만을 기준으로 한 도시계획사업추진, 교외지역 발전에 중점을 두고 상하수도 완비 등 사회기반시설 확충 |
제13대 |
윤치영(尹致暎) |
1963년 12월 17일 - 1966년 3월 30일 |
구로 숭인 은평 뚝섬 등 4개지구 4천만평에 대한 도시계획 수립, 제2한강교(양화대교) 준공 (1965.1.25), 제3한강교(한남대교) 착공, 서울시 최초의 장기계획인 시정10개년 계획 수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