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법명은 편조(遍照)로, 신(辛)은 속성이며, 돈(旽)은 퇴속하여 고친 이름이다. 호는 청한거사(淸閑居士)이다.
계성현(桂城縣) 옥천사(玉川寺) 사비(寺婢)의 아들로 태어나 김원명(金元命)의 추천으로 공민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국정을 맡았다. 1365년(공민왕 14) 진평후(眞平侯)라는 봉작까지 받아가며 정치개혁을 단행하였는데, 그의 개혁정치는 고려 내부의 혼탁한 사회적 폐단을 타개,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이라는 토지개혁 관청을 두어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은 토지를 각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노비로서 자유민이 되려는 자들을 해방시켰으며, 국가 재정을 잘 관리하여 민심을 얻었다.
그러나, 급진적 개혁은 상층 계급의 반감을 샀고, 왕의 신임을 기화로 점차 오만해져서 방탕과 음란을 일삼았으므로 점점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풍수지리설로 왕을 유혹, 수도를 충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오도도사심관(五道都事審官)이 되려다 왕의 불신을 받았다. 그러자 왕을 살해하려는 역모까지 꾸며 권력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발각되어 수원에 유폐되었다가 2년 만에 처형되었다(이것이 현재 주류 학설임).
![]() |
이 문서는 한국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