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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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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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알베르 카뮈는 1913년 현재의 알제리(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의 몬도비 (Mondovi)에서 태어났다. 출생한 지 1년이 채 못되어 그의 아버지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후, 홀어머니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래서, 그가 교통사고로 죽은후 출판된 자서전에는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혼쭐이 났다는 내용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결핵에 걸려 건강을 해친 것으로 전해진다. 1933년에서 1936년까지 알제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1934년에는 알제리의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1년 후 탈퇴한다. 언론인으로 노동 극장 (Théâtre du travail)을 설립하여 식민지 정치의 부당성을 비판한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2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 전투 (Combat)라는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방인》(1942년 5월 19일)이 출간되었고, 이로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및 프랑스 문학계에서 20세기의 중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되지만, 1960년 1월 4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편집] 창작 및 정치 활동
카뮈의 좌파성격의 정치이념 및 활동은 그의 출생지인 알제리에서 몸소 경험한 식민주의의 폭력과 부당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유럽의 정치적 변동에 유인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대전 이후 카뮈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특히 자신과 장 폴 사르트르의 정치 견해가 다르다는 점을 뼈 아프게 인식했다. 즉 사르트르가 스탈린의 테러정치를 "사회혁명"이라는 목적 아래 묵인하자 카뮈는 사르트르를 무척 혐오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에는 사르트르가 자신이 주관하던 도덕적 가치와 정치사상에 관한 프랑스 지식인의 토론광장인 잡지 "현대시대" (Temps mordernes)에서 카뮈의 사회혁명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공격함으로써, 두 사람은 어느 점에서 보면 뿌리가 같다고도 볼 수 있는 서로의 철학적 사상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냉담상태에 접어들었다.
[편집] 카뮈의 문학 및 철학
카뮈의 문학 세계에서 두드런진 경향은 실존주의 철학과 관련된 "데카당스"(décadence) 사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대표적 철학 수필 《시시포스의 신화》의 첫머리에서 까뮈는 인간의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을 극단적 개념인 자살과 부조리(l'absurdité)에 덧붙여 해석하므로서, 후에 "부조리"의 개념은 마치 까뮈의 문학 및 철학을 상징하는 낱말로 이해되고 있다.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인간의 삶에서 무엇이 그리고 어디에 "부조리"가 있다는 것인가?
[편집] 읽어보기
[편집] 문학작품
- 소설
- L'étranger (이방인)
- La peste (페스트)(1942년)
- 극작
- Les justes (정의인)
- L'état de siège (수포상태)
- Le malentendu (오해)
- 철학수필
- Le mythe de Sisyphe (시지포스의 신화)
- L'homme révolté (반항하는 인간)
[편집] 연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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