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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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브로크 후작부인 앤 볼린(Anne Boleyn, 1504년? - 1536년 5월 19일)은 영국왕 헨리 8세의 두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이다.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했던 헨리 8세는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을 거부하고 영국 성공회를 설립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앤 볼린은 불륜과 이단, 모반죄 등의 혐의로 1536년 5월 19일 사형당했다. 헨리 8세는 그로부터 11일 후 앤 볼린의 시녀였던 제인 시무어와 결혼한다.
[편집] 생애
앤 볼린의 아버지는 외교관 토머스 볼린, 어머니는 명문 하워드가의 엘리자베스였다. 생년월일은 명확하지 않으나 초여름에 노포크(Norfolk)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총명하고 재치있는 성격으로 어린 나이 때부터 프랑스의 궁정에서 수업을 받으며 예법을 닦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했다. 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 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었다가 루이 12세가 승하하고 프란시스 1세가 즉위하자 새 왕비 끌로드의 시녀가 되었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앤 볼린은 이후로도 프랑스식 옷차림, 문학, 음악, 그리고 종교 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521년 경 앤 볼린은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을 위해 영국으로 돌아와 헨리 8세의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지참금 문제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이 무산되자 앤 볼린은 노섬브리아 공작의 후계자 헨리 퍼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차와 울시 추기경의 반대로 퍼시와의 결혼은 무산되었다. 낙심한 헨리 퍼시는 궁정을 떠났다.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에 따르면 헨리 8세가 앤 볼린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1526년경이다. 앤 볼린은 전통적인 금발 푸른 눈의 미인은 아니었으나 흑발에 까만 눈의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유행의 최첨단을 걸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받은 교육으로 세련된 기품이 배어 있었으며 화술도 뛰어났다. 이미 앤의 누이(언니인지 동생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메리 볼린을 정부로 두었던 전력이 있는 헨리 8세는 앤을 정부로 삼으려 했다. 앤은 왕의 유혹을 거절하며 정식 결혼을 요구했다. 왕비 캐서린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했던 헨리 8세는 젊은 앤 볼린이 왕자를 낳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1527년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이혼을 시도한다. 캐서린의 거센 저항과 교황청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자 헨리 8세는 성공회를 설립,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529년부터 앤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영국 궁정에서 출세가도를 걷는다. 앤 볼린은 신실한 캐서린 왕비를 왕궁에서 쫓아낸 여자라고 백성들의 반감을 샀다.
1532년 헨리 8세는 앤에게 펨브로크 후작부인의 지위를 내려 신분을 격상시켰다. 미혼 여성이 직접 작위를 하사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성공회 크랜머 대주교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무효화했다.
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볼린은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볼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왕비로 즉위했다.
헨리 8세는 앤이 임신한 아이가 왕자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진다. 대신 왕은 앤 볼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을 주기 시작한다. 앤 볼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은 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볼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볼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볼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앤 볼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볼린은 두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동생 로시포드 공작이 사형당한지 이틀 후인 5월 19일, 앤 볼린은 런던탑에서 참수당했다. 사형장에서 앤 볼린은 백성들에게 왕에게는 잘못이 없으니 충성을 다해 섬겨달라고 부탁하는 연설을 남겼다. 앤 볼린의 마지막 말은 "주님께 내 영혼을 맡깁니다"였다.
[편집] 전설
- 앤 볼린의 왼손 손가락이 여섯개였다거나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었다는 소문은 앤이 마녀로 몰려 사형당한 사실에서 비롯된 유언비어로 추정된다. 왕족이 아닌 한 신체적으로 큰 결함이 있는 여성이 왕비가 되는 일은 드물었다.
- 런던탑에는 밤마다 머리 없는 앤 볼린의 유령이 떠돌아다닌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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