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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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항섭(嚴恒燮, 1898년 음력 9월 1일 ~ 1962년 7월 30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일파(一派)이다.
경기도 여주 출생으로 보성법률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했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투신했다. 1930년 한국독립당, 1935년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가했으며, 이후 광복 시점까지 임시정부와 광복군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40년 한국국민당과 재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의 3당이 통합되면서 한국독립당이 창당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선전부장, 주석(김구) 판공비서에 임명되었다. 광복후 귀국해서도 1948년 남북대표자연석회의에 함께 참가하는 등 계속 김구의 측근으로 활동하다가 한국 전쟁 중 입북했다.
그는 임정 요인으로서 북조선으로 간 인물들 중 50대 초반으로서 비교적 나이가 젊고 건강한 편이었기에, 1958년 구 우익 계열의 재북 인사들이 김일성을 지지하며 결성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입북 과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납북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막내딸의 출생지가 김구의 거처인 경교장일 정도로 김구와 가깝던 엄항섭이 1949년 그가 암살된 후 정치적 기반을 잃었고 대통령 이승만과는 정적이었다는 점에서 자진 월북했다는 소문도 오랫동안 나돌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건국훈장 독립장이 조금 늦은 편인 1989년에 추서되었다. 유해는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어 있다.
부인인 연미당과 맏딸 엄기선도 임시정부에서의 활동을 인정 받아 건국훈장을 수여받은 독립운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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