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몬 데 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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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몬 데 발레라(Éamon de Valera[e:mˠɔn̪ˠ dʲɛ vʲal̪ʲɛɾʲa], 1882년 10월 14일 ~ 1975년 8월 29일)는 1882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아일랜드의 교사, 정치인이다. 그는 영국에 대항해 아일랜드 독립에 힘썼으며 아일랜드 임시정부의 수반을 맡았다. 그는 아일랜드 자유국의 대통령, 아일랜드 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또한 아일랜드 제헌의회의 의장이었다. 데 발레라는 20세기 아일랜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편집] 부활절 봉기
문학도의 길을 걸은 그는 1904년 더블린 대학을 졸업했다. 교사에 임용되어 아일랜드어 부활운동에 참여했다. 게일어 연맹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는데, 이 단체에서 수많은 미래의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와 정치인들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무렵인 1913년 데 발레라는 아일랜드 의용군에 가입했고 1916년 발생한 부활절 봉기를 주도했다. 봉기 당시 패트릭 피어스와 체포되어 처형될 뻔했으나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그러나 패트릭 피어스는 총살당했다.
[편집] 정치 활동
부활절 봉기의 다음 해 신페인당 총재가 되어 1918년 총선거를 승리로 이끈다. 아일랜드 의회를 구성 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아서 그리피스와 마이클 콜린스가 주축이 된 사절단을 영국으로 파견하였다. 아일랜드 대표단은 비공식 협상을 통해 조약을 체결한 뒤 더블린에 돌아왔다. 조약 내용을 살펴본 데 발레라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조약의 내용이 일방적으로 영국에 유리한 내용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피스와 콜린스의 입장은 이 조약이 더 나은 자유를 위한 조약으로 이 조약으로 자치의 발판을 마련 한 뒤 완전한 아일랜드의 독립을 달성하는데 있었다. 데 발레라는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영국-아일랜드 조약 체결 후 그는 대통령직을 사임한 후 신페인당과 함께 반정부노선으로 돌아섰다. 재선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아일랜드 내전 이후 그는 당적을 옮겼다. 그는 신페인당에서 탈당한 뒤 아일랜드 공화당을 창당했다.
아일랜드 공화당은 1932년에 있었던 아일랜드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정당이 되었고 데 발레라는 윌리엄 토머스 코즈그레이브의 뒤를 이어 아일랜드 자유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이듬해부터 영국과 관세협정에 들어갔다. 데 발레라는 이 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체계적으로 저항하여 새 헌법을 세우고 영국의 해군기지를 패쇄시켰다. 1951년과 1957년 아일랜드의 총리를 맡았다. 1959년과 1966년 아일랜드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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