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엑스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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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X-파일은 문화방송의 이상호기자가 입수한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내용을 담은 90여분짜리 테잎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5년 7월 22일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테잎에는 1997년 9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 사이의 대화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현재 보도 및 취재가 계속 진행중인 내용으로, 아직 내용 전부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신한국당 당시 대통령 선거 후보 이회창씨, 검찰 고위직의 커넥션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어,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호 X-파일이라는 말은 이상호기자가 취재를 위해 2004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남긴 〈기자와 아내〉라는 글이 한겨레를 통해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태영그룹 대표가 자신의 회사의 비리를 폭로한 이상호 기자를 비롯한 3명과 술자리를 같이 한 자리에서 핸드백을 건네줬다가 다시 돌려받은 사건이 이 글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상호 기자의 미국 방문 목적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상호 기자는 〈기자와 아내〉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번 출장의 의미를 덧붙이며 '이번 출장계획이 누군가에 알려질 경우 다시 이 곳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자본은 자기 보호를 위해 (불명예와 누명)보다 더한 것을 기자에게 씌우려 할 것 이다' '나의 삶은 출장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것이다' 등의 표현으로 사안이 굉장히 중요한 내용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2005년 1월에 도청 내용을 담은 테잎을 입수한 이후에 관련 내용의 보충 취재가 이어지면서 내용이 조금씩 알려져 언론계 주변에 대강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문화방송 측은 테잎 제작 과정의 불법성을 고려해 보도 여부를 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차일피일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결국 관련 내용이 전면적으로 불거진 것은 도청테이프의 출처를 밝혀 기사화한 조선일보의 7월 21일자 신문을 통해서였다.
다음날, 문화방송이 도청테이프에 드러난 삼성그룹과 중앙일보의 정치자금 지원의혹을 전면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을 토대로 참여연대는 이건희 삼성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와 정치권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검찰은 도청 테이프의 유출 경위에 대해서만 조사해, 삼성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검찰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도청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12월 14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회사돈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 100억원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 등 삼성측 관련자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전원 무혐의 처리하였고,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하였다.
하지만 도청 내용을 입수해 보도한 이상호 기자,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자와, 뇌물 받은 검사의 명단을 폭로한 노회찬 의원 등에 대해서는 모두 불구속 기소 또는 차후 조사 방침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편집] 사건과 관련된 언론사들의 보도 내용 및 사건 추이
[편집] 2005년 6월 8일
- 데일리서프라이즈는 6월 3일 한겨레에 실린 전규찬 교수의 칼럼과 및 언론계의 소문,그리고 이상호 기자의 '구찌스캔들'당시의 글을 정리한 양문석씨의 컬럼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통해서 X-파일의 존재및 윤곽이 들어나고, X-파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편집] 2005년 7월 21일
- 조선일보는 이 날 1면에 문화방송에서 입수한 테이프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국가안전기획부의 비밀조직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이번 관련 내용 뿐 아니라 정계 재계 언론계 인사들의 다른 도청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다라고 보도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기사에는 모 재벌, 중앙 일간지 고위층의 대선 자금 지원논의 내용 역시 간략히 소개되어 X-파일의 내용이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 이 날 문화방송은 그동안 미뤄왔던 X-파일 관련 보도를 뉴스데스크 시간에 하기로 결정했으나, 홍석현 주미대사와,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이를 법원이 일부 받아들이면서 실제 방송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는 간략한 개요만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 한편 한국방송은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KBS 뉴스 9를 통해 국내 최고의 재벌기업 임원과 한 신문사 최고 간부가 9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판세와 자금 지원 등을 논의 했다고 관련 대화 내용을 직접 인용하면서 상세히 보도했으나 이날 11시의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이 내용을 보도하지 않아 의혹을 증폭시켰다.
[편집] 2005년 7월 22일
- 문화방송은 30여분에 걸친 시간을 할애하여, X-파일과 관련된 뉴스를 보도하면서 관련자의 이름을 처음으로 실명으로 밝혔다. 특히 사건의 중심인 이상호 기자가 직접 나와 테이프와 안기부의 비밀 문건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문화방송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삼성그룹이 이회창 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에게 100억원 이상을 제공했으며, 이 과정에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 심부름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후보에게도 자금을 지원했으며, 검찰 간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을 주면서 인맥을 치밀하게 관리해왔다고 보도했다.
-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은 이상호x파일이 대한민국의 자본권력, 언론권력, 정치권력, 관료권력 등 4대 권력의 추한 뒷거래라고 규정하고, 1997년 IMF사태 발생의 결정적 기폭제가 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기아사태'의 발생원인을 밝혀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편집] 2005년 7월 23일
- 문화방송은 이 날 뉴스데스크에서 삼성측이 이회창 전 신한국당 대통령 선거 후보 뿐 아니라, 후보 경선에 참가한 다른 8명에게도 로비를 벌였다고 추가 보도했다.
[편집] 2005년 7월 24일
- 서울방송은 안기부의 도청팀인 미림팀의 실무책임자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실무책임자는 이번에 밝혀진 내용이 자신들이 도청한 내용이 맞으며, 다른 언론사들도 도청 내용들이 모두 알려질 경우 무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문화방송은 삼성그룹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여야 정치권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금융계열사에서 빌려준 자금 수천억원을 미리 회수해 기아자동차의 부도를 일으켜, IMF 사태의 한 단초를 제공한 의혹이 있다고 추가 보도했다.
[편집] 2005년 7월 25일
- 사건에 관련된 삼성그룹과 중앙일보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드러난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 과장된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 참여연대가 1997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된 2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여기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홍석현 주미대사,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와 동생 이회성씨, 전현직 검찰 간부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 2005년 7월 26일
- 홍석현 주미대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조만간 후임자를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 국가안전기획부 미림팀장이었던 공 아무개씨가 언론에 자신의 심경과 유출 경위를 밝힌 자술서를 공개한 후 자택에서 자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편 공 아무개씨에게 테잎을 넘겨받아 이 내용을 언론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재미교포가 인천공항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편집] 2005년 7월 27일
[편집] 2005년 7월 28일
- 이상호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와, 언론개혁국민행동의 토론회에서, 언론의 초점이 도청문제와 정쟁으로 흐려지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이번 싸움은 문화방송이 패배하고 결국 하나의 헤프닝으로 끝날 것이므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문화방송, 한겨레, 일부 인터넷 매체 등에 대한 소송의 법적 검토작업이 끝났다고 밝혔다. 빠르면 내주 초에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 삼성그룹은 기아자동차 부도에 삼성이 관련되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 해명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1996년 말 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간 1997년 10월 까지 대출액은 약 150억원 정도 감소했다. 삼성은 이 가운데 257억원이 일반 개인의 자동차 구입 할부비용을 돌려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편집] 2005년 7월 29일
- 문화방송은 자사 기자가 처음 도청 테이프를 제보한 재미동포 박인회씨의 미국행 비행기 표를 법인카드로 대신 구매해줬다고 뒤늦게 시인했다.
-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서창희)는 지난 27일 전 안기부 미림팀장인 공운영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녹음 테이프 274점과 13권 분량의 녹취록 등 관련 자료를 압수했다고 오늘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에 공개된 도청 테이프 내용 외에도 다른 내용들이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번 자료들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 도청 테이프를 문화방송 이상호기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재미교포 박인회씨가 통신비밀보호법 및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또한 검찰은 이상호 기자를 비롯한 4-5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편집] 2005년 8월 1일
- 참여연대는 삼성그룹 법무팀 변호사들과 X파일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 검사들의 학연, 사법연수원 경력, 검찰 근무 경력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고위직을 비롯한 검찰 수사진은 삼성그룹 법무팀 변호사들과 선후배, 동기관계이거나, 같은 근무지에서 근무한 경우도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편집] 2005년 8월 5일
- 이상호 문화방송 기자가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상호 기자는 도청자료 입수와 보도 과정에 대해 진술했다고 밝혔다.
- 국가정보원은 과거 정권의 도청 실태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가정보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집무 기간에도 도청을 계속했었다고 밝혔다.
[편집] 2005년 8월 9일
[편집] 2005년 8월 18일
-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삼성 그룹으로부터 1996년-1997년 사이에 수백-수천만원 씩 정기적으로 떡값을 받은 전현직 검찰간부 7명의 실명과, 관련 부분 도청 테잎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에 밝혀진 검찰간부 중에는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의 동생인 홍석조 당시 서울지검 형사 6부장 (현재 광주고검장), 김상희 당시 대검수사기획관 (현 법무부 차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삼성 그룹의 검찰 인맥 관리에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깊이 관계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노회찬 의원 홈페이지의 관련 보도자료)
[편집] 2005년 9월 7일
- 한겨레는 현재 알려진 것과 다른 또 다른 도청 테이프를 갖고 중앙일보와 거래를 시도한 사람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내용에 따르면, 1999년 박인회씨가 삼성그룹을 만나 거래를 시도하기 전, 다른 사람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의 대화 내용이 담긴 도청 녹취록을 들고 중앙일보 고위직에 접근해 거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편집] 2005년 9월 12일
- 한겨레는 이 날 신문에서 도청테이프에 나타난 삼성그룹의 한나라당 자금 지원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에 대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이건희 회장에게서 받은 이회창 후보 지원자금 가운데 30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친족간의 일로 범죄 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뒤늦게 밝혔다.
[편집] 2005년 9월 13일
- 오마이뉴스는 1997년 대선자금 불법모금 사건의 검찰 수사기록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수사 내용이 도청 테이프의 핵심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당시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회성씨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검사에게, "1997년 9월 초순 이후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삼성 관련 인사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60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기록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도청 테이프에서 홍석현씨가 1997년 9월 초 "이회성이를 우리집으로 오라고 해서 두 개를 차에 실어 보냈다."라고 발언한 내용과 시기와 장소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 최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미국으로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검찰의 수사 가능성 언급과, 국정감사 증인 출석문제로 논란이 커지고 있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제3단독재판부는 공운영씨와 재미교포 박인회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서 공운영씨는 도청 보고서와 테이프를 유출한 행위는 인정했지만, 삼성그룹에 금품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인회씨도 삼성그룹에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으며, 고위층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한 의도에서 언론에 이를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편집] 2005년 9월 16일
- 이회성씨가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회성씨는 1997년 대선자금 수사당시의 진술을 번복, 삼성측으로 부터 60억원이 아니라 30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이회성씨 측 변호사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삼성측으로 부터 받은 돈의 액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60억원은 대충 진술한 내용이며, 실제로는 30억을 받은 것이 맞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횡령 배임 혐의의 경우 50억원 이상을 받았을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10년인 점을 감안해 삼성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편집] 2006년 2월 4일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5개월 만에 전용기 편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이건희 회장은 공항에서 "지난해 1년은 여러가지로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게 생각한다." 라고 밝혔다.
[편집] 2006년 7월 14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이상호 기자에 대해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1]
[편집] 2006년 8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는 이상호 기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