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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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쇼키에 따르면, 4세기경 왜국이 한반도 남부 지방에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세웠다고 한다. 일본 제국의 식민 사관에서는 조선을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임나일본부의 기능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편집] 사료
니혼쇼키의 백제본기에는 진구 황후가 369년 가야 지방을 점령해 임나일본부를 두고 실질적인 통치를 하다가 562년 신라에 멸망했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니혼쇼키는 천황의 왕권을 높이기 위해서 쓰여진 것으로 한국·일본 어느 쪽에서나 사료 가치가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광개토대왕비의 신묘년(391년)에 해당하는 곳에는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臣民”이라고 쓰여 있는데, 일본 학자들은 “왜가 바다를 건너 백제, 임나,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한다. 한국 학자들은 비문이 변질된 것이라고 여긴다. 또한 필체 등을 들어 비문의 일부가 20세기 초에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임나’는 가야, 특히 아라가야를 부르는 말인 것으로 추정된다.
[편집] 지금의 학설
백제본기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서 한일 양쪽 어디에서도 정설이 따로 없다. 학설 가운데 몇가지를 뽑아 보면,
- 가야 지방의 일본인을 관리하기 위해 일본 조정이 세운 기관이었다는 설.
- 일본이 가야 지방에 일본부를 두고 가야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설.
- 일본과 외교 관계가 돈독했던 가야 동맹의 한 나라였다는 설. [1]
- 가야인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 세운 나라였다는 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주장하는 것.)
- 백제가 가야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기관이었다는 설. (대한민국 사학계 중 일부가 주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