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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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성도, 중국어: 成都, 병음: Chéngdū)는 중화인민공화국 서남부 쓰촨 성의 청사 소재지이다.
온난한 기후를 비롯한 유리한 자연 조건으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
청두는 중국 서부 지역의 중심지이다. 청두 공항은 1984년부터 국제공항의 역할을 하고 있고 현재 아시아나 항공이 인천-청두 노선을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청두는 특히 서부 대개발 사업을 계기로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1896년 세워진 쓰촨 대학교는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교 가운데 하나이다.
2005년 2월 26일에는 주 청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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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고대에는 청두 근교 삼성퇴(기원전 4800년-3100년)에서 청동기 문화가 융성했다.
기원전 4세기 초 고대 촉나라의 왕이 수도를 현 청두의 위치로 옮겼다. 옛 주나라의 태왕이 수도를 옮기면서 마을이 되는데 1년, 도읍이 되는데 2년이 걸렸다는 기록에 감명을 받아 새 수도를 '도읍을 이룩하다'라는 뜻의 성도(成都)로 정했다.
기원전 316년 진나라가 고촉을 정복한 후 진의 한 장군에 의해 도읍이 새로 세워져 오늘날의 청두로 계속되고 있다. 한나라 때는 익주(益州)로 개칭하였다. 기원전 250년경에는 이빙 부자가 교외에 수리 시설인 두장옌(都江堰, 도강언)을 건설했는데 지금도 청두에 홍수 없이 물을 공급하고 있다. 두장옌과 칭청산(青城山, 청성산) 산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한나라의 쇠망 후에는 유비가 익주를 수도로 촉한을 세웠다.
당나라 때는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청두에서 삶의 일부를 보냈다. 안사의 난 때에는 현종이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중국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최후로 내준 도시가 청두이다. 1949년 12월 10일 공산당군에 함락될때까지 장제스 부자는 청두 방어를 지휘했다. 그 후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 섬으로 탈출하였다.
[편집] 자매 도시
[편집] 인구
2004년 청두 시 인구는 1059.69만명으로 충칭, 상하이, 베이징다음으로 중국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이 중 남성은 538.17만명, 여성은 521.52만명이다. 2000년 제5회 전국 인구 조사에서 한족은 충칭 시 인구의 99.46%를 차지하고, 소수 민족은 0.54%를 치자한다.
[편집] 바깥 고리
- ((중국어/영어)) 공식 홈페이지
분류: 중화인민공화국의 도시 | 쓰촨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