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일 8세 팔라이올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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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일 8세 팔라이올로고스(그리스어: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의 초대 황제(1261년~1282년)이다.
훗날 '아주 교활한 그리스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책략가로, 테오도로스 2세 황제의 뒤를 이은 요안네스 4세 황제의 섭정을 맡아 보다가 제위를 찬탈하였다. 마케도니아 ·알바니아를 통합, 니케아를 수도로 정한 약제(弱帝)의 로마 제국(니케아 제국)을 강화하여, 1261년 라틴 제국에게 빼앗겼던 구도(舊都)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여 비잔티움 제국을 재흥시켰다. 그가 열린 팔라이올로고스 왕조는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약 200년간 지속되었다.
[편집] 생애
아버지는 대귀족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콤네노스 팔라이올로고스이며, 어머니는 알렉시오스 3세 앙겔로스의 손녀 테오도라 앙겔리나 팔라이올로기나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장 고귀한 가문의 출신이며, 1204년에 라틴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 없었다면, 차기 황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던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용맹성을 발휘하여 니케아 제국의 역대 황제들에게 고용되어진 프랑크족 용병들의 지휘관으로 승진하였다. 테오도로스 2세의 붕어로부터 며칠 후인 1259년에 중신 무자론을 암살하여,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르세니오스 아우트리아노스와 함께, 당시 8살이었던 요안네스 2세 황제의 공동 후견인을 맡았다. 그 후 대제후(大諸侯)의 칭호를 얻고, 최종적으로는 제노바의 협조를 받아 공동 황제로 선언하였다. 사실상 니케아 제국을 탈취한 셈이었다.
1260년에 페라고니아 전투로 라틴 제국과 에피로스 제후국 등의 연합군을 물리쳐, 1261년에는 라틴 제국으로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 아들 안드로니코스를 공동 황제로 삼은 뒤 스스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서 선언하였다. 같은 해 12월, 요안네스 4세의 눈을 뽑아버리고, 마르마라 해의 성곽에 유폐시켰다. 이 행위로 인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아르세니오스에 의해 파문되어 1268년에 새 총대주교로 교체될 때까지 파문장은 철회되지 않았다. 이렇게 요안네스 4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제위에 오를 수 없게 손을 쓴 미카일 8세는 서둘러서 요안네스 4세의 자매들을 여러 나라에 귀양보내, 자신의 왕조의 안전을 도모했다.
미카일 8세 팔라이올로고스는 제위에 오르자마자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라틴 제국 시대의 관습을 즉각 중단시키고, 제4차 십자군의 침공 이전의 전통 관습과 제도를 부활시켰다.
1274년 리옹의 종교 회의에서 교황의 주권을 인정하여 동 ·서 교회의 통일이 성립하였으나, 얼마 뒤 킵차크의 몽골인 국가, 이집트 맘루크인 국가와 삼각 동맹을 형성하여 서유럽과 대립하였다. 그러나 소아시아를 등한시하였기 때문에 셀주크 튀르크 ·몽골의 침입으로 많은 영토를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