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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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기(白寅基)는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전주 지역의 유명한 부호인 백남신의 아들로, 친일 금융인이다. 백연기(白演基)라고도 한다.
무관인 아버지를 따라 1903년 대한제국의 육군 참위로 임관했다.
군대가 해산된 후에는 금융인으로 변신,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을 설립해 전무 취체역을 지냈으며, 한성농상은행 감사와 조선식산은행 상담역으로 근무했다. 1927년부터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기도 했으며, 식민지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감사를 지냈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고,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는 아버지 백남신과 함께 포함되었다.
부인은 익산의 남성고등학교 설립자 이윤성이며, 백인기와 이윤성의 손녀가 이회창의 형인 이회정의 장남과 결혼하여 두 집안은 사돈 사이이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과장을 지낸 유명 화가 배운성이 그의 아들 백명곤의 몸종으로 독일에 갔다가 미술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