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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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신(白南信, 1858년 12월 ~ 1920년 4월)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부호(富豪)이자 친일파로 본명은 낙신(樂信),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족보에는 남신이란 이름을 고종이 동학농민운동 진압 이후 삼남(三南)을 맡길만 하다는 이유로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외의 기록에서는 나타난 바가 없다.
1893년에 무과에 급제하고, 1897년에 궁내부 영선사 주사에 임명되어 대궐에서 소용되는 물품의 구입을 담당하였고, 전주진위대의 향관을 겸하여 군량 및 군수물자를 조달하였다. 1902년에는 궁내부 내장원의 전라도 검세관에 임명되어 탁지부에서 내장원에 외획한 결세전을 징수하여 이를 사고팔아 서울로 운송하는 일을 맡았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토지를 매입하거나 사채업에 이용하였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1905년 이후에는 농장형태의 농업 경영을 통해 전라도의 부호로 성장하였다.
1908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에 전라북도 대표 2명 중 한사람으로 임명되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 일본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보였다. 1918년에 일본이 시베리아로 출병했을 때 벼 4천석을 군용미로 헌납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6등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전북의 친일단체 전북자성회의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고종이 재위했을 때에는 해마다 5만 냥 상당의 부채 3만 자루를 궁으로 보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1]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아들 백인기와 함께 포함되었다.
[편집] 각주
- ^ 황현, 《매천야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