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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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주(郭榮周, 1924년 1월 10일~1961년 12월 29일)는 이승만의 제1공화국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경찰관이다.
이천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자원 입대하여, 하사관까지 지냈다. 해방 후, 경찰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두번 낙방하고 세번만에 간신히 수도경찰학교에 입학, 수료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경무대의 경비경찰로서 이승만을 경호하기 시작하였고, 점점 이승만의 총애를 받아, 1956년 경무대 경찰서장 (현재의 대통령 경호실장, 직위 경무관)으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점점 그의 위세는 이승만의 후광으로 더 높아져서, 권력의 제3인자인 '부부통령'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한편 같은 고향 출신의 선배인 이정재와 막역하여, 정치깡패를 비호하였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 학생들이 경무대 앞에서 시위를 하자, 이승만의 안전을 위해, 학생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려, 경무대 앞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이승만이 하야하고, 얼마 안있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박정희가 실권을 잡자,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61년 12월 29일 이정재, 전 내무장관 최인규, 제1공화국 당시 영화계의 대부로 불리던 임화수와 같이 사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