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인규(崔仁圭, 1919년 3월 9일~1961년 12월 29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경기도 광주 태생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10세 때 광주군 구천면 상일공립보통학교(上一公立普通學校)에 입학, 4학년 때인 1932년 서울 중앙기독교청년회 속성과에서 1년을 공부한 실력으로 1933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 2학년 보결시험에 합격하였다.
1941년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생명보험주식회사에 입사하여 광복 때까지 근무하였다.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거쳐 1947년 뉴욕대학교 상과대학에 편입학하고, 1949년 졸업하여 귀국하였다. 같은해 대한교역공사(大韓交易公社)업무부장으로 들어가 1950년 대한민국 정부의 동남아시아 무역사절단 대표로 파견되기도 했으며, 이사장까지 승진하였다. 그러나 이 공사의 해산으로 1951년 발족한 한국무역진흥주식회사로 옮겨 상무이사로 재직하다, 1954년 대한민국 3대 총선에 자유당 공천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입후보하였으나 신익희에게 패배하여 낙선하였다. 1955년 이기붕의 알선으로 국제연합한국부흥위원회(UNKRA) 뉴욕주재 한국대표로 임명되었고, 같은해 제네바회담에 한국업저버로 참석하였으며, 1956년 외자청장(外資廳長)이 되었다.
1958년 대한민국 4대 총선에 다시 광주군에서 자유당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고, 9월에 교통부장관에 기용되었다.
1959년 3월에는 내무부장관이 되어,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총지휘하여 4·19 혁명의 한 원인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지자, 3·15정·부통령부정선거를 총지휘한 원흉으로 지목받아 같은해 5월 3일 구속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혁명재판부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2월 29일 곽영주, 임화수, 이정재 등과 같이 서울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편집] 참고자료
전 임 김일환 |
제18대 내무부장관 1959년 3월 - 1960년 3월 |
후 임 홍진기 |
전 임 신익희 |
제4대 국회의원(광주군)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자유당 |
후 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