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스테파노 10세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스테파노 10세 | ||||||||||||||
|
교황 스테파노 10세(라틴어: Stephanus PP. X, 이탈리아어: Papa Stefano X)는 제154대 로마 교황(재위: 1057년 8월 2일 - 1058년 3월 29일)이다. 세속명은 프레드릭 드 로렌(프랑스어: Frederic de Lorraine)이다.
1000년에 로렌에서 태어난 그는 전임 교황 레오 9세에 의해 추진된 교회 개혁을 주도한 인물들 속에 속한다. 교황은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형은 로렌의 대공 고드프루아이며 혼인에 의하여 토스카나의 대공이 되었고 교황 레오 9세와도 친척이었다. 리에주에서 수학하고 의전단에 속한 후 성 람베르트 성당의 수석 부제로 있다가 1051년 3월 12일 레오 9세에 의해 교황청의 상서국장과 도서관장이 되어 교황의 보좌관들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1054년 비잔티움 제국에 사절로 갔다가 신성로마제국의 원수가 될까 두려워 사임하고 몬테카시노에 가서 지냈다. 거기서도 개혁을 시도하였고 훔베르트의 도움으로 그 수도원의 아바스가 되었다. 1057년 6월 14일 교황 빅토르 2세에 의해 로마로 불려 와 추기경이 되고 2달 후에 빅토르 2세가 선종하자 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신성로마제국 내에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으므로 제국의 승인은 받지 않았다. 그는 교황 파스칼 1세 이래 로마의 성직자들에 의해 자유로이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는 미성년자라 태후 아그네스가 섭정하고 있었고 교황의 형은 로렌의 대공이었으므로 사실 신성로마제국의 슨인이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교황좌에 오른 후 교회의 개혁과 중앙 집권을 추진하였다. 베드로 다미아노와 훔베르트를 등용하고 힐데브란트를 사절로 자주 파견하였다. 전임 교황들의 뜻을 받들어 성직매매와 성직자들의 결혼에 대해 개혁을 시도하기 위하여 지방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그는 동방정교회와의 분열을 정리하고 이탈리아 반도 남부를 침범한 노르만족을 물리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스테파노 10세의 재위는 비록 짧았으나 그레고리오 개혁 이전에 교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한 교황 레오 9세와 교황 니콜라오 2세와 더불어 위대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 임 빅토르 2세 |
제154대 교황 1057년 8월 2일 - 1058년 3월 29일 |
후 임 니콜라오 2세 |
이 문서는 교황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