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실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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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실베리오(라틴어: Sanctus Silverius, 이탈리아어: Papa Silverio)는 제58대 로마 교황(재위: 536년 6월 1일 - 537년 11월 11일)이다.
교황 아가피토 1세의 죽음이 로마 전 시내에 전해지자 테오다투스 왕은 동로마 제국의 음모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 교황 호르미스다의 아들이자 차부제였던 실베리오를 재빨리 교황으로 앉히게 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전임 교황 아가피토 1세의 유지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의 수행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대주교 메나스의 사회로 회의를 열어 안티무스와 단성론자들이었던 안티오키아의 세베루스와 아파메아의 페트루스를 단죄하였다. 이에 실망한 황후 테오도라는 533년 이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의 사절로 머물던 부제 비질리오와 타협하였다. 어떤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으나 비질리오는 야심적인 인물이라 모종의 밀약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테오도라의 첫 의도는 실베리오를 압도하여 안티무스를 복귀시키려 한 것이었으나 실베리오가 이를 거절하자 비질리오를 로마에 파견하고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협력하여 실베리오를 폐위시키도록 지시하였다. 비질리오는 벨리사리우스가 로마에 도착한 후 바로 도착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로고트 왕 비티게스가 1년 동안 로마를 점령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은 포위되고 말았다. 오스트로고트 병사들은 수도를 끊어 버리고 카타콤바와 성 밖의 성당들을 파괴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벨리사리우스는 처음에는 실베리오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므로 테오도라의 지시를 이행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테오도라의 신임자인 그의 아내 안토니나의 권유로 지시를 이행하게 되었다. 믿을 만한 사건의 진상에 의하면, 그는 로마를 고트족에게 넘겨준다는 위조된 편지에 실베리오가 연루되어 있다는 누명을 씌웠다. 그리하여 실베리오는 벨리사리우스 앞에 출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베리오는 비질리오만을 대동하고 벨리사리우스와 안토니나가 침상에 누워 있는 내실로 인도되었다. 그러자 안토니나는 실베리오가 자기들을 속이고 고트족과 내통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동안 부제 한 사람이 실베리오의 팔리움을 벗기고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강제로 교황복을 벗기고는 수도복으로 바꿔 입혔다. 그 후 실베리오가 퇴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537년 3월 새 교황 선출이 이루어졌다. 실베리오는 비밀리에 리치아의 파타라로 유배되었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파타라의 주교로부터 정확한 소식을 듣고는 실베리오를 로마로 귀환하게 하였다. 만일 실베리오가 반역적인 편지를 썼다면 제국 내의 어느 도시에서 주교로 자유롭게 지내게 할 수 있었다. 만일 그 편지가 위조된 것이라면 교황직에 복귀시키려 했다. 모함을 받은 실베리오는 이탈리아로 돌아가게 되었으나 로마로 가지는 못하고 티레니아 해의 팔마리아 섬으로 유배되었다. 537년 11월 11일 교황직이 강탈되고 얼마 후 그곳에서 최후를 마쳤다. 동로마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실베리오가 그 섬에서 굶어 죽었으므로 재판이 필요 없었다고 전한다. 실베리오는 11세기부터 순교자로 인정되어 성인의 반열에 들어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임 아가피토 1세 |
제58대 교황 536년 6월 1일 - 537년 11월 11일 |
후 임 비질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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