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황제(皇帝)는 제국(帝國)의 군주이다.
목차 |
[편집] 설명
제후국이 있는 왕, 다시 말해 왕 중의 왕이다. 중국에서 주나라까지는 왕이 홀로였고, 왕과 제후국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주나라 이후 진시황 때부터 왕 중의 왕은 황제라 부르고, 제후국의 군주는 왕이나 공, 후, 백, 자, 남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제후국은 크기에 따라 하, 은, 주부터 존재해 왔다. 황제의 아들은 왕이나 친왕으로 봉해졌다. 조선에서는 왕의 아들을 대군 또는 군으로 봉해졌다.
황제의 호칭은 2인칭으로서는 폐하(陛下)이다. 이는 뜰 폐(陛)자를 사용하는 데 그 뜻은 높이 우르러 볼 사람이기에 뜰에서 뵙는다는 뜻이다. 왕의 2인칭은 전하(殿下)이다. 이는 계단 아래에서 우르러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폐하와 전하는 둘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그 뜻(버터ᇰ 아래)이 같았다 (陛下ᄂᆞᆫ 버터ᇰ 아래니 皇帝ᄅᆞᆯ 바ᄅᆞ 몯 ᄉᆞᆯᄫᅡ 버터ᇰ 아래ᄅᆞᆯ ᄉᆞᆲᄂᆞ니라 《월인석보 2,65》). 다만 그 품격에서 폐하가 전하보다 높았다.
이때 폐(陛)자는 '뜰'보다는 '뜰층계'라는 뜻으로 풀어야 더욱 옳고, 이는 전(殿)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군주가 있는 곳이 다를 뿐이며, 신하는 언제나 전하 또는 폐하의 처음 뜻이 가리키는 '뜰'(뜰층계의 아래)에 자리하게 된다.
[편집] 황제의 유래
황제의 어원은 '삼황오제'에서 가져온 것이다. 진시황이 처음 사용하였다.
[편집] 동아시아에서의 황제
황제(皇帝)가 다스리는 나라는 제국이다. 봉건 시대에서는 영지나 봉토에 왕이나 영주를 봉하였고, 근대에서는 총독을 파견하여 제후국이나 속국을 지배하였다. 중국에서는 달리 천자(天子), 일본에서는 천황(天皇)이라고 하였다. 중국과 중국 주변 국가에서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는 오직 황제국 뿐이었고, 제후국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황제의 국가임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황제에 버금가는 태왕(太王)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고려는 황제라고 자칭한 적이 있다. 고려 광종은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임금이 근무를 할 때 황색 조복을 입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아직 확인한 바가 없지만, 고려에서도 중국의 천단과 비슷한 건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맹위를 떨치던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에 간섭하면서 임금의 업적을 높이는 이름인 시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짐(朕)으로 부르지 말고, 고(告)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다(공민왕이 집권하던 때부터 다시 짐으로 부르도록 했다). 이는 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와 국교를 맺으면서, 오랜 기간에 지속되었으며, 1894년 조선이 청나라의 연호를 폐지하고, 갑오개혁으로 근대화가 되자 왕을 대군주 폐하, 왕비를 왕후 폐하로 격상해 부르면서,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대한제국 때는 황상이라는 단어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대황제 폐하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편집] 유럽에서의 황제
서구에서도 황제 칭호를 사용한 여러 나라들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로마 제국과 같이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도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아우구스투스가 호국경과 집정관을 폐지하면서 황제의 지위를 올랐고, 로마 제국의 후예인 비잔티움 제국 역시 황제 칭호를 그대로 물려 받았다. 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도 황제 칭호를 사용하였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 러시아, 유고슬라비아에서도 황제 칭호를 사용했고, 10세기와 11세기의 불가리아에서도 황제 칭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