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르바노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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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바노 4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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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우르바노 4세(라틴어: Urbanus IV, 이탈리아어: Papa Urbano IV)는 제182대 로마 교황(재위: 1261년 8월 29일 - 1264년 10월 2일)이다. 세속명은 자크 팡탈레옹(프랑스어: Jacques Pantaléon)이다.
1200년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신부가 된 후 리옹에서 의전사제, 베르됭의 주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를 거쳐 교황이 되어 비테르보에서 대관식을 가졌다.
교황이 되기 전에 1245년 리옹 공의회에 참석하여 신성로마제국과 동유럽의 교황 사절로 일하였고 동방에서 수년 간 지낸 후 정치적인 감각을 쌓았다. 교황이 된 후 뛰어난 행정력으로 교황청을 개혁하고 교황령 내부의 행정을 강화시켰다. 추기경단을 강화하고 새로운 추기경들(그 중에 6명은 프랑스인)을 임명하였다. 로마에서 전쟁이 일어나 전세가 혼란해지자 비테르보와 오르비에토에 거주하였다. 나폴리 왕국의 만프레드와 토스카나와 롬바르디아의 기벨리니 연합당의 세력이 강해서 교황은 공석인 시칠리아의 왕위를 프랑스의 루이 9세에게 위임하여 그 왕의 동생인 앙주와 프로방스의 샤를에게 양도하였다. 만프레드와 기벨리니의 알력은 후임 교황에게까지 이어졌다.
교황의 두 동방 계획, 즉 발칸 반도에 라틴 국가를 세우는 계획과 동방정교회와의 재일치 계획은 취소되었다. 동방정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미카일 7세 두카스와의 합의는 꼭 필요했는데도 앙주의 샤를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제정하였다. 페루자에서 선종하였다.
전 임 알렉산데르 4세 |
제182대 교황 1261년 8월 29일 - 1264년 10월 2일 |
후 임 클레멘스 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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