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일 (18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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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일(李種一, 1858년 11월 6일 ~ 1925년 7월 13일)은 한국의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옥파(沃波), 천도교 도호는 묵암(默庵)이다. 천연자(天然子)라는 필명도 사용했다.
충청남도 태안의 양반 가문에서 출생한 그는 1873년 과거에 급제하면서 개화파 관료의 길을 걷게 된다.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갈 때 수행하면서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 근대 문물을 직접 보고 온 것 또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그는 한글 신문인 《제국신문》을 창간하고 《대한황성신문》 사장을 맡아 언론계에서 활동했고,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에 참가하고 교육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등 개화 사상에 기반한 계몽 운동에 활발히 나섰다.
1906년 손병희를 통해 천도교에 입교한 뒤, 1919년 3·1 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으로서 이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천도교가 운영하던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 사장을 맡고 있던 이종일이 독립선언서를 거사 열흘 전부터 비밀리에 인쇄한 것이다. 당시 보성사는 최신식 인쇄 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종일은 이곳에서 천도교의 월보(月報)를 펴내고 있었다. 거사의 핵심중 하나인 독립선언서 인쇄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데다 최남선과 함께 이승훈을 통한 기독교 대표들과의 연결 고리를 주선한 그는, 이후 열린 공판에서 민족대표 중에서도 주범으로 꼽혀 징역 3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출옥 후에는 조선국문연구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글맞춤법을 연구한 한글학자이기도 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태안의 충애사(忠愛祠)라는 사당에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민족대표 33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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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 | 이승훈 박희도 이갑성 오화영 최성모 이필주 김창준 신석구 박동완 신홍식 양전백 이명룡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 |
천도교 : |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임예환 나인협 홍기조 박준승 양한묵 권병덕 김완규 나용환 이종훈 홍병기 이종일 최린 |
불교 : | 한용운 백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