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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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wood, 1859년 7월 1일 ~ 1916년 10월 12일)는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이다. 원두우라는 한국어 이름을 가질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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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생애
[편집] 선교사파송
1859년 7월 1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언더우드는 13세 되던 때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1881년 뉴욕 대학교를 졸업했으며,같은 해부터 1884년부터 미국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학교(The Dutch Reformed Theologica Seminary)에서 공부했다. 1883년 11월 장로교 목사가 된 그는 1년간 인디아 선교를 위해서 의학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았으며, 1884년 7월 28일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에 의해서 개신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하지만 조선사회는 개화파들이 일으킨 정변인 갑신정변으로 사회가 혼란했기 때문에 일본에 머물러야 했다. 일본에 머무는동안 언더우드는 조선사람이자 마르코의 복음서번역자인 이수정에게 한국어를 배우면서 조선에서의 개신교 선교를 준비하였다. 미국의 기자인 그리피스가 쓴 『한국, 은자의 나라』(1882년) 등 몇 권의 책만 읽었을 뿐 조선이나 한국어에 무지했던 그에게 이수정의 한국어 강의는 조선선교준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편집] 입국과 선교활동
부활주일인 1885년 4월 5일에 인천에 입국한 그는 아직 조선정부에서 선교활동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중원에서 물리와 화학담당교사로 활동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교육자로서의 활동은 연희전문학교(현재 연세대학교)설립(1915년 3월),초등학교 설립등의 업적으로 이어진다. 개신교 선교사로서의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교회설립과 전도여행이었다. 1887년 언더우드는 조선인 교우들의 참여로 정동교회(현 새문안교회)를 설립했고, 초기 개신교가 활발한 지역이었던 북한지역에서의 전도여행을 3차례나 하였다. 또한 성서번역에도 공헌했는데, 1887년에 상임성서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함께 마르코의 복음서 한글판인 <마가의젼 복음셔언ㅣ>를 번역·출간하는 업적을 남겼다. 1916년 1월 무리한 공부로 몸이 쇠약해진 그는 그해 10월 12일 애틀랜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한국에 대한 열정은 자손들에게 계승되어 3대에 걸쳐서 언더우드 집안은 의료선교, 한남대학교 설립으로 한국사회발전에 기여하였고, 특히 4대손인 원한광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당시 계엄군의 광주시민학살만행을 해외에 알려서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추방당하는 고난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