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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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일(姜炳一, 1892년 6월 24일 ~ 1919년 3월 4일)은 3·1 운동 때 평안남도의 만세 시위 군중에게 발포했다가 시위대에 의해 살해된 헌병보조원이다.
1919년 3월 4일, 3·1 운동으로 평안남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에서 약 3천여명의 군중이 모여 강병일이 근무하고 있던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의 사천시장 방면으로 시위 행진을 벌였다. 이때 사천헌병대에는 이 지역에서 만세 시위를 조직하던 기독교 계열의 인사들이 사전 적발되어 구금되어 있던 상태였다.
사천헌병주재소의 소장 사토(일본어: 佐藤實五郞)와 헌병보조원 강병일, 김성규, 박요섭 등은 미리 매복해 있다가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시위 참가자 수십명을 살상했다. 강병일은 돌을 던지며 맞선 시위대에게 사토, 김성규, 박요섭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다.
그해 9월 11일 일본 정부는 이날 살해당한 헌병보조원들에게 욱일장 8등, 훈8등 백색동엽장의 서훈을 내려 공적을 기렸고, 대대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켜 그를 척살하는 데 가담한 조진탁을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는 등으로 강하게 처벌했다.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