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오 나카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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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오 나카무라(Kuniwo Nakamura 일본어: クニヲ・ナカムラ 1943년 11월 24일)는 팔라우의 4대 대통령을 역임한 일본계 인물이다.
남양 군도가 일본의 위임통치령일때, 그 중심도시인 코로르(현 팔라우 수도)에서 팔라우인 추장의 딸과 미에 현 출신 일본남성 사이에 8남매중 7번째로 태어났다. 태평양 전쟁시에는 팔라우섬 아이메리크의 에우레이 촌에 강제이주를 당하고 2살때 일본의 패전으로 팔라우는 미국신탁통치령이 된다. 그의 일가는 고국의 고향으로 철수하지만, 패전후 식량부족및 차별때문에, 팔라우로 다시 복귀한다. 팔라우의 모계사회 중심제때문에 자녀들의 귀향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거주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이 때문에 일본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베리류 지구에서 유소년기를 보낸후, 버브테스트 교회의 목사집에서 기숙하면서 괌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하와이 대학에 진학하였다. 졸업후에는 팔라우로 돌아와 교사가 되었으나, 곧 미크로네시아 의회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유엔신탁통치령의 경제적 조언및 얍 지구의 경제개발직원을 역임하고, 1970년에는 아이메리크의 유력한 부족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는 후에 강력한 정치적 어드벤티지가 된다.
[편집] 정치 경력
1981년 팔라우 독립의 첫걸음으로서 자치정부 및 헌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헌법조항중 비핵조항이 문제가 되어 1992년 주민투표에 의해 삭제되게 되었다. 또한 신탁통치종료를 위해 1982년 미국과의 사이에서 맺은 50년간의 자유연합협정은 1983년 이후의 일곱 차례의 주민투표에서 75%이상의 찬성표를 얻지 못하여 결국 승인되지 못했다. 이러한 지지부진속에 대통령 암살,자살,파업 및 폭파사건등 정정불안이 계속되었다.
나카무라는 지속적으로 독립을 주장, 1993년에 전임자의 갑작스런 유고에 따라 대통령에 취임하여, 2001년까지 제3,4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재임중 독립운동에 계속 전념하여 1994년에 결국 독립및 유엔가입을 성취하였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일본과의 외교,무역관계를 매우 중시하여 수차례 방일한 바 있다. 팔라우는 현재 지구상에서 일본어가 공용어로 지정된 유일한 국가이다. 퇴임후에도 여러 차례 방일하여, 와세다 대학교등지에서 강연하였다.
국가원수로는 유일하게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약칭 새역모)의 지지자로서 이름이 올라 있었으나, 현재는 삭제되었다. 새역모는 창설초기에 본인의 동의 없이 지지자 명을 올린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한편 나카무라의 대리인자격의 인물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