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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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南慈賢, 1872년 12월 7일 ~ 1933년 8월 22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경상북도 영양에서 태어났다. 김영주와 결혼했으나, 을미사변 때 남편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전사하여 25세의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기르면서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곧바로 김동삼의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으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편강렬, 양기탁, 손일민 등이 만주 지역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추진할 때 참가했으며, 무장 투쟁이나 테러 위주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참여했다. 국내에는 두차례 잠입했다. 1922년 참의부의 채찬과 함께, 1926년에는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국내로 들어왔고, 두번째 잠입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1932년 만주국 수립으로 영국인 리튼이 이끄는 국제연맹의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손가락을 잘라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서 보낸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독립기념관에 이 구절을 새긴 남자현지사 어록비가 세워졌다. 고정희의 〈남자현의 무명지〉라는 시가 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기도 하다.
1933년 주만 일본대사이며 관동군 사령관인 무토 노부요시의 암살 계획을 세우고 하얼빈에서 변장한 채 정탐을 하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옥중 단식으로 건강을 잃고 보석으로 풀려나온 후 곧바로 사망했다.
국가보훈처 차관을 지낸 김시복이 남자현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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