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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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徐椿, 1894년 ~ 1944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였으나 이후 친일파로 변절했다. 아호는 오봉(五峰).
정주의 오산학교와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도쿄에서의 2·8 독립선언에 실행위원 11인이자 9인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고, 체포되어 금고 9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3·1 운동에 참가한 김도태, 김지환은 그의 오산학교 선배이며, 1918년 말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에게 도쿄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전한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그는 2·8 독립선언 참가자들 중 이광수와 함께 대표적인 변절자가 되고 말았다. 귀국하여 1927년 《동아일보》, 1932년 《조선일보》에서 경제부 기자를 지내면서 경제 전문가로 활동하다가, 중일 전쟁 이후로 일제의 전시 경제 정책을 찬양하는 어용 평론을 썼으며 《조광》 등 친일 잡지에 기고했다. 특히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주필을 맡으면서 방송선전협의회 강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위원, 임전보국단 평의원 등으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통해 친일 활동을 벌였고, 1940년 일본어로 발행되는 친일 잡지 《태양》을 창간했다.
2·8 독립선언 참가 공적으로 인해 1963년 대통령표창과 함께 애국지사 서훈을 받았으나, 1996년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서훈이 취소되었다. 유해는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가 서훈 취소 이후 수년간의 논란 끝에 현재는 이장된 상태이다.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파 목록에 선정되었다.
2·8 독립 선언 9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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