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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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아누스(라틴어: Traianus)는 로마 제국의 제13대 황제(53년 9월 18일 - 117년 8월 7일)이다. 오현제 중 한 사람이며, 속주 출신자로서는 처음으로 로마 황제에 올랐다.
[편집] 생애
로마 제국의 속주 히스파니아(현재의 에스파냐)의 이탈리카 태생이다. 대(對)게르만족 최전선인 게르마니아 속주의 총독을 맡고 있었던 그는 97년에 네르바 황제의 양아들이 되어, 98년에 황제에 즉위하였다.
군인 출신인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래의 방위 정책에 반해 군사 원정에 적극적이었다. 도나우 강을 넘어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다키아(현재의 루마니아)를 정복하여, 일시적으로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지방도 제국령으로 삼는 등 트라이아누스의 치세 동안 로마 제국의 영토는 최대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의 판도는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부터 이집트 남부, 북쪽으로는 브리타니아(현재의 그레이트브리튼 섬) 남부에까지 미쳤다. 다키아 원정 때의 일은 트라이아누스 기둥이라고 칭해지는 대리석 기둥에 조각으로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내정 문제에 대해서는, 선제(先帝) 네르바를 본받아 원로원과의 협조를 중시하였다. 또, 구빈 제도 충실, 세금 부담 경감, 공공사업 진흥 등의 행정 개혁을 대거 실시하는 등 제국의 번영에 노력하였다. 시내에 포로 로마눔 부근에 새로운 광장을 축조하여, 벽돌을 세워 공설 시장을 마련해 시민들을 입주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어 로마 시민 모두의 공감을 얻었다.
이러한 내정과 원정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원로원으로부터 "Optimus Princeps"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이 칭호는, 당시 주조된 화폐에도 새겨져 있다.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여색보다는 남색을 더 좋아한 그는 항상 아름다운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대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황제로서의 그의 직무 수행에 방해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제위는 양아들로 삼은 사촌형제로 하드리아누스가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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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이름 |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이아누스 (Marcus Ulpius Traianus) |
황제 이름 |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이아누스 아우구스투스 (Imp. Caesar Nerva Traianus Augustus) |
재위 기간 | 98년 1월 28일 - 117년 8월 7일 |
앞선 황제 | 네르바 |
다음 황제 | 하드리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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