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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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고대 그리스어(Μεσοποταμία)에서 온 말로서 '강들의 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래로 역사, 지리학 및 고고학적 명칭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메소포타미아는 지리학상 중동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주변 지역(현재의 이라크)을 일컫는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이 자연적으로 가져다 주는 비옥한 토지로 인하여 기원전 약 6000년 구석기 시대에 인간이 정착 주거하기 시작한 이래 점차 인류 고대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개방적인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강의 범람이 불규칙적이고 잦아서 치수와 관개 등 대규모 사업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러 도시 국가가 나타나고, 교역과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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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고대 왕국과 도시
- 바빌로니아
[편집] 사회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 인의 문명이 토대가 되었고 아카드·아무르 인들의 문명이 가미되었다. 화폐는 쓰이지 않아서 물물 교
이루어졌다.
[편집] 종교
현세적 다신교로서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점성술도 현세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로서 발전하였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불규칙적이고 잦은 범람은 참혹한 재앙을 가져왔고, 개방적인 지형은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을 불렀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메소포타미아 인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다. 자연의 혜택보다는 재앙을 극복하는 데 힘써야 했던 수메르 인들은 삶도 지극히 현세적인 삶을 꾸려 나갔고, 사후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희망을 갖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도 암울하고, 비관주의적인 특징이 강하였다. 그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생각과 현세적인 가치관은 홍수 설화와 '길가메시 서사시'등에 잘 나타나 있다.
[편집] 문자
수메르 인은 쐐기 문자(설형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점토판에 뾰족한 갈대 펜으로 글씨를 새기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자인데 표음 문자로 발전했다. 페니키아 인들이 사용한 문자는 오늘날 알파벳의 시조가 되었다.
[편집] 역법
수메르 인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 원을 360°로 나누는 것도 그들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